차포 뗀 대한항공-아시아나 합병, 이제 출혈 메울 방안을

입력
2023.11.03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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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간 끌어온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이 큰 관문을 넘어섰다. 아시아나항공 이사회는 어제 화물사업 분리 매각안을 가까스로 의결했다. 두 항공사 기업결합을 심사 중인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유럽 화물노선 독점 우려로 요구한 시정조치를 수용한 것이다. 마냥 반기기엔, 출혈이 만만치 않다.

양사 합병은 2020년 11월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공식 확정됐다. HDC현대산업개발의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무산된 후 불과 2개월여 만에 이뤄진 ‘항공 빅딜’이었다. 주요국 경쟁당국의 견제는 충분히 예상된 일이었다. 기업결합을 신고한 14개 경쟁당국 중 한 곳만 불허해도 합병은 무산된다. 그 문턱을 넘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다. 영국 런던 히스로공항 주 7회 슬롯(특정시간 이착륙 권리)을 팔았고, 중국에는 46개 슬롯을 반납했다. 주요 자산을 경쟁국들에 고스란히 내어준 것이다.

이번에 EU 측에 보낼 시정조치안에는 화물사업부 매각은 물론 14개 유럽 노선 중 4개 노선을 반납하는 방안이 담길 거라고 한다. 화물 부문 매출은 지난해 아시아나 전체 매출의 절반이 넘는 3조 원에 달한다. 이사 1명은 사퇴하고 1명은 중도 퇴장하는 등 극심한 진통을 겪은 것도 출혈에 따른 배임 우려가 상당함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니 “차포 다 떼고 뭐 하러 합병하느냐” “애당초 잘못된 합병이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게 무리는 아니다. EU 관문을 넘어서도 미국과 일본 경쟁당국 심사가 남았다. 추가로 내줘야 할 것이 더 있을 거란 얘기다. 정부는 더 이상 지체되지 않도록 이들 경쟁당국과 충분한 소통을 하고, 합병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정책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한 '플랜B'도 아직 놓아서는 안될 것이다.

무엇보다 대한항공의 책임이 무겁다. 경영권 방어만 염두에 둔다는 지적을 받아온 조원태 회장은 단일 국적항공사로서 국익을 위한 중장기적 경쟁력 회복 방안 마련에 총력을 다해야 한다. 독점적 지위를 활용해 소비자 혜택을 갉아먹는다면 부메랑이 될 것임을 명심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