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윤석열 대통령의 ‘돈 잔치’ 비판으로 곤욕을 치른 은행권이 이번엔 ‘종노릇’ 발언에 바짝 긴장하고 있다. 정부·당국 눈총에 앞다퉈 취약계층 지원책을 짜내는 ‘상생금융 시즌2’로 번지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윤 대통령은 30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국무회의 모두발언 중 참모진이 최근 민생 현장을 돌아보며 청취한 내용을 소개했다. 이 과정에서 “고금리로 어려운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은 '일해서 번 돈을 고스란히 대출 원리금 상환에 갖다 바치는 현실에 마치 은행의 종노릇을 하는 것 같다'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고 언급한 대목이 화제가 됐다. 서민 고통 속 은행만 여전히 이자장사로 배를 불리고 있다는 뜻으로 읽혀서다.
윤 대통령이 은행권을 직격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앞서 2월 수석비서관회의에서도 ‘은행의 공공재적 성격’을 강조하며 “은행 돈 잔치로 국민 위화감이 생기지 않도록 하라”고 주문한 바 있다. 이후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생색내기식이 아닌 서민·중소기업에 실질적이고 체감할 수 있는 과감한 지원을 해야 한다”고 거들자 각 은행은 이 원장 순회 일정에 맞춰 금리 인하, 수수료 면제 등 상생금융 보따리를 줄줄이 풀어놨다.
이번 '종노릇' 발언 역시 대출금리 인하 등 사회공헌 확대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란 게 대체적인 예상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고금리 장기화에 따라 경기가 어렵고 힘들어졌으니 은행이 예대마진을 줄이고 사회적 기업으로서 책임을 다해주길 바란다는 취지의 말씀으로 이해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이미 내놓은 상생금융안에 더해 여러 기부나 사회공헌 사업, 소상공인 지원 정책을 더 신경 써야 한다는 의미인 것 같다”며 “조만간 당국이 움직이지 않겠느냐”고 귀띔했다.
대외적으론 모두 “소상공인 지원에 의지를 갖고 있다”는 원론적 입장을 내세우지만, 서민들이 힘들어진 건 은행이 아닌 경기 탓이라며 억울해하는 분위기도 일부 감지된다. 경제가 활성화돼야 사업이 잘되는데, 불황 탓에 대다수 산업에서 좀처럼 매출이 오르지 않다 보니 모든 화살이 은행에만 쏠리고 있다는 토로다.
금융당국이 은행에 부담금을 부과해 초과이익을 환수하는 ‘횡재세’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는 일부 언론보도와 윤 대통령 발언을 연결 짓는 시각도 있다. 이에 배당이 줄어들 것이란 우려가 부각되며 이날 금융지주 주가는 일제히 약세를 보였다. 유가증권(코스피)시장에서 하나금융지주는 3.76% 내린 3만9,650원에 거래를 마쳤고, KB금융(-2.67%)과 신한지주(-2.57%), 우리금융지주(-1.41%)도 나란히 하락했다.
다만 대통령실 관계자는 “현장의 목소리를 국무위원과 다른 국민들께 전달드리는 차원에서 나온 이야기”라며 “어떠한 정책과 직접 연결을 짓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고 횡재세 도입과의 연관성을 부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