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657조 원 규모 내년도 예산안을 놓고 힘겨루기에 나선다. 더불어민주당은 '경제 포기', '국민 방치' 예산이라고 몰아붙이며 무엇보다 연구개발(R&D)과 지역화폐 예산 증액을 벼르고 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공세를 저지하면서도, 내년 총선을 앞둔 만큼 소상공인과 청년을 비롯한 민생 예산을 확보하는 데 적극적이다. 서로 민생을 외치는 여야가 얼마나 접점을 찾을지 주목된다.
'예산 전쟁'의 신호탄은 윤석열 대통령의 31일 국회 시정연설이다. 이어 △11월 3~8일 부처별 심사 △9, 10일 종합정책질의 △14~24일 예산소위를 거쳐 30일까지 막판 여야 협의를 진행한다. 내년 예산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 법정시한은 12월 2일이다.
내년 예산 심사의 최대 쟁점은 올해 대비 16.6%나 줄어든 R&D 예산이다. 김성주 민주당 정책위 수석부의장은 29일 간담회에서 "원래 R&D 예산은 전문가 심의에서 몇 개월에 걸쳐 평가해 왔다"며 "(이번에는) 윤 대통령의 '카르텔' 한마디에 증액에서 감액으로 방향이 틀어졌다. 기본적인 절차를 지키지 않은 불법"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R&D 예산 삭감을 윤석열 정부의 주요 실정으로 판단해 이에 대응하는 태스크포스(TF)까지 운영하며 화력을 쏟아부을 방침이다.
국민의힘은 R&D 예산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정부 기조를 뒷받침하면서도 증액 가능성을 열어뒀다. 윤재옥 원내대표는 최근 "현장 여론도 좀 들어보고 보완할 부분이나 고칠 부분이 있으면 여야 간에 협의해 정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여당 간사인 송언석 의원은 30일 본보 통화에서 "R&D 예산 구조조정을 한 번 해야 한다"면서도 "꼭 필요하고 시급한 부분이 있는데, R&D라고 해서 증액이 안 된다고 할 이유는 전혀 없다"고 말했다. 다만 "정부에서 감액한 규모만큼 국회에서 증액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이와 달리 서민·민생 예산은 여야 모두 늘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정부안에 대해 "청년, 여성, 노인, 자영업자, 중소기업을 방치하겠다는 국민 방치 예산"이라며 관련 예산 확대를 시사했다. 윤 원내대표 역시 "서민, 청년, 소상공인 예산을 늘려달라는 국민적 요구가 있다"며 "(정부안에서) 사업 우선순위를 조정해서라도 민생을 더욱 알뜰히 챙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야당과의 민생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여당이 정부안 사수에만 매달리지 않겠다는 의미다.
다만 개별 사업으로 범위를 좁히면 여야 입장 차가 상당하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지자체장 시절 대표 정책인 지역화폐(지역사랑상품권) 사업 예산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내년도 지역화폐 예산을 전액 삭감했는데, 민주당은 "지역사랑상품권은 67%가 자영업 관련 부분에서 사용됐고, 호응도가 높다"며 "지자체 간 불평등이 생길 수 있어 국비가 필요하다"(김성주 의원)고 반발이 거세다. 반면 송언석 의원은 "지역화폐는 소상공인 지원 예산이라고 볼 수 없다"면서 증액은 어림없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은 세계스카우트잼버리 파행으로 요구액 대비 78%나 삭감된 새만금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을 복구하는데도 사활을 걸 전망이다. 한병도 전북도당위원장과 지역 정치인들이 집단 삭발을 할 정도로 필사적이다. 반면 국민의힘은 새만금 예산과 관련해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