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서 활개 치는 ‘유대인·팔레스타인 증오’ 범죄… “폭력의 승자는 없다”

입력
2023.10.3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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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친팔' 시위대, 이스라엘 여객기 습격
영국 팔레스타인 식당선 '무슬림 살해' 협박
전장 밖 국가서도 ‘혐오 범죄’ 날로 확산 중
“진정한 적은 폭력을 ‘정답’으로 결정한 이들”

#1. “이스라엘에서 온 유대인을 색출하라.”

29일(현지시간) 러시아 다게스탄 자치공화국의 마하치칼라 공항. 시위를 위해 몰려든 수백 명이 이렇게 외쳤다.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출발한 여객기의 도착 소식이 퍼진 탓이다. 활주로까지 난입한 시위대는 승객 여권을 일일이 확인하면서 이스라엘인을 찾아내려 했다. 이들은 “어린이 등 팔레스타인인 수천 명을 죽인 살인범 이스라엘인은 다게스탄에 설 자리가 없다”고 외쳤다.

#2. “무슬림의 목숨을 ‘테이크아웃’ 하러 갈게.”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런던의 테이크아웃 전문 팔레스타인 음식점 ‘샥슈카’에는 매일 협박 전화가 걸려 온다. 지난 7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 이후부터다. 식당 운영자인 할림 켈렐라는 “하루에도 20건 이상의 위협이 쏟아져 전화로는 이제 주문을 받지 못한다”며 “두려움에 일을 그만둔 직원도 있다”고 전했다.

미 "반유대주의 312건·반이슬람 774건 신고"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촉발된 증오와 혐오에는 국경이 없다. 무력 충돌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나 서안지구, 또는 이스라엘 본토에서 벌어지지만, 무분별한 적개심이 표출되는 무대는 전 세계다. 폭력과 보복의 연쇄 작용으로 ‘반(反)유대인’ ‘반무슬림’을 외치는 증오 범죄가 세계 곳곳에서 들끓고 있는 것이다. ‘분노와 단죄’라는 명분이 특정 집단을 표적으로 삼은 혐오 폭력의 공간을 만들어 낸 셈이다.

관련 범죄의 급증은 숫자로도 확인된다. 최근 영국 런던 경찰청은 지난해 10월 28건이었던 반유대주의 범죄가 올해 같은 기간 408건에 달했다고 밝혔다. 반이슬람 범죄도 65건에서 174건으로 늘어났다. 사디크 칸 런던시장은 지난 20일 유대교·이슬람교 지도자와 회의를 갖고 대책을 논의하기도 했다.

다른 나라 상황도 마찬가지다. 미국 내 유대인 단체인 반명예훼손연맹(ADL)은 하마스 공격 이후인 7~23일, 미국에서 312건의 반유대주의 사건이 접수됐다며 “388%나 급증한 수치”라고 밝혔다. 미국이슬람관계위원회(CAIR)에는 같은 기간 이슬람 혐오 사건 774건이 신고됐다. 중국 온라인에도 유대인을 나치에 비유해 조롱하는 게시글이 잇따르는 등 반유대주의 정서가 심각하다고 미국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혐오는 원인 아닌 결과”... 위험 수위 넘었다

증오와 혐오는 원인이 아닌 ‘결과’로 나타난다. 전쟁의 포화는 전장과 관계없는 곳에서 살아가는 이들마저 겨눈다. 지난 11일 미국 뉴욕시 브루클린 거리를 걷던 팔레스타인 남성 3명은 “팔레스타인인이냐”라는 물음과 함께 욕설과 폭행을 당했다. 사흘 후, 뉴욕 맨해튼 지하철역에서 주먹으로 얼굴을 맞은 여성을 향해 가해자는 “당신이 유대인이기 때문”이라고 외쳤다. 미국에서 팔레스타인계 6세 소년이 무슬림이라는 이유만으로 흉기 공격을 받아 숨진 사건은 증오 폭력이 위험 수위를 한참 넘어섰음을 보여 준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이 격화할수록, 양 집단을 향한 범죄도 늘어날 공산이 크다. ADL의 뉴욕 지역 담당자 스콧 리치맨은 “이스라엘 지상군이 가자지구에 진입하면 이스라엘인 증오 사건도 증가할 것”이라고 미국 CNN방송에 말했다. CAIR의 아흐마드 레합은 “이스라엘에서 일어난 일로 팔레스타인인 전체가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결론이 내려진 것 같다”고 토로했다.

폭력의 악순환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각각 유대교와 이슬람교의 지도자인 ‘랍비’ 브러스와 ‘이맘’ 허버트는 최근 미국 공영 NPR방송 인터뷰에서 “이 전쟁의 진짜 적은 유대인이나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이 아니다. 폭력이 유일한 답이라고 결정한 사람들”이라고 입을 모았다.

전혼잎 기자
김현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