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면 으레 발표되는 보도 자료가 있다. 우리 해군 이지스함이 북한의 탄도미사일을 가장 먼저 탐지하는 데 성공했다거나, 한·미·일 이지스함이 한반도 인근에서 미사일 방어 훈련을 실시했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보도 자료의 말미에는 항상 ‘북한 미사일 위협에 대한 완벽한 방어태세 구축’이나 ‘군의 철통같은 대비태세’ 등의 말이 붙는다. 군 당국의 이러한 발표는 우리 해군이 이지스함이라는 무기를 전력화한 뒤 10년 넘게 계속되고 있고, 그때마다 우리 국민들은 우리 군이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충분한 대응 전력을 갖추고 있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군 당국의 이러한 주장은 거짓말이다. 우리 해군의 이지스 구축함은 북한의 미사일을 볼 수는 있지만 그것을 요격할 수 없는 ‘깡통’이기 때문이다. 우리 군은 지난해 10월과 올해 2, 4, 7월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대응해 한·미·일 해상 미사일 방어 훈련을 실시했다. 그때마다 군은 “북한의 탄도미사일 도발 상황을 상정해 탄도미사일 표적에 3국 함정이 대응하는 절차를 숙달하는 데 중점을 두고 훈련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엄밀히 말하면 이는 거짓말이다. 무기체계의 성능과 구현 가능한 기능만 가지고 표현하면 한·미·일 MD 훈련은 동등한 위치에서 함께 북한 미사일에 대응하는 훈련이 아니라, 미·일 이지스함이 MD 작전을 수행할 때 한국 이지스함이 옆에서 구경하거나 미·일 이지스함을 엄호하는 훈련이라고 말하는 것이 정확하다.
미국과 일본의 이지스함은 도입 후 지속적인 성능 개량이 있었다. 일본은 현재 보유 중인 8척의 이지스 구축함 모두에 MD 능력을 부여해 놓았고, 미 해군 역시 대부분의 이지스함에 MD 능력을 부여하는 성능 개량을 진행 중이다. 미국과 일본 이지스함은 이제 MD를 넘어 통합대공미사일방어(IAMD) 능력을 가진 군함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지스함은 미국의 이지스 전투체계와 SPY-1 또는 SPY-6/7 계열 위상배열레이더를 장착한 군함을 통칭하는 말이다. 과거 이지스함은 여러 개의 공중 표적에 동시 대응할 수 있는 방공함의 역할만 했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 탄도 미사일 요격이 가능하도록 레이더와 센서, 전투체계 일부를 개량한 ‘BMD’ 옵션이 추가되기 시작했다. 기존의 이지스 BMD는 미사일 방어 임무를 수행할 때 레이더와 전투체계가 가진 자원을 모두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탄도미사일 표적 외에 다른 위협에 대해서는 대응할 수가 없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IAMD 개념이다. 탄도미사일과 일반 항공기·순항미사일을 동시에 요격할 수 있는 이지스함이 만들어진 것이다. 미 해군은 지난 10월 중순, 이러한 IAMD 개념이 적용된 이지스 구축함을 동원한 요격 실험에서 탄도미사일 2발과 순항미사일 2발을 동시에 요격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 2년간 한반도 인근에서 한·미·일 MD 훈련에 참여했던 미국과 일본의 이지스함은 모두 MD 능력을 갖춘 배이고, 이 중 일본 이지스함은 모두 IAMD 능력을 갖도록 개량된 배들이다. 이들은 SM-2·SM-6와 같은 함대공 미사일은 물론, SM-3 대탄도탄 미사일을 동시에 운용해 현존하는 거의 모든 유형의 공중 위협에 대응할 수 있다. 일본이 지난 3~4년 동안 도입한 2척의 마야급 구축함은 물론, 15년 전 우리 세종대왕급과 ‘공동구매’ 사업을 통해 레이더와 전투체계를 함께 샀던 아타고급 2척도 이런 IAMD 능력을 갖추고 있다. 공동구매했는데 우리 이지스함은 ‘깡통’이고 일본 이지스함은 ‘풀옵션’인 이유는 단순하다. 이지스함 구매 직후 성능 개량 사업을 했던 일본과 달리 한국은 이상한 정치 논리에 휘말려 성능 개량 사업 자체가 추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지스함은 항모 같은 고가치 자산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무기다. 우리 해군에는 항모가 없기 때문에 우리 이지스함이 지켜야 할 고가치 자산은 우리 국토이고, 이 때문에 MD 능력 보유는 기본 요구 사항이었다. 과거 방공함 도입 사업을 할 때 유럽의 APAR 레이더를 제쳐두고 더 비싼 이지스용 레이더인 SPY-1D를 선택한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우리 이지스함은 소요 제기 당시부터 20년 넘게 중국을 자극해서는 안 된다는 정치적 반대에 가로막혀 MD 능력이 없는 ‘깡통 상태’로 유지될 것을 강요받았다. 이지스 BMD 도입은 곧 미국 주도 MD 참여라는 논리가 1척에 1조 원 넘는 고가의 자산을 깡통으로 만든 것이었다.
지난 10월 24일 해군본부 국정감사에서는 이 문제가 또다시 거론됐다. 이종호 해군참모총장은 해군의 MD 능력에 대한 국민의힘 임병헌 의원의 질의에 “기존 세종대왕급 이지스함 3척에 SM-3나 SM-6 미사일과 같은 요격체계는 없으며, 앞으로 3척이 도입되는 정조대왕급 구축함에도 SM-6 미사일만 도입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임 의원은 6년 전 소요 결정된 SM-3 도입사업이 왜 진척이 없는지 물었는데, 이에 대해 해군참모총장은 “SM-3는 중간단계고, SM-6는 기동함대 함정의 자함방어를 위해 도입했다. 탄도탄 요격 시 종말단계 요격이 가능해 (SM-6 도입을) 추진했다”고 답했다. 대단히 충격적인 답변이 아닐 수 없었다. 애초에 정조대왕급 이지스 구축함 도입이 결정된 것은 북한의 탄도미사일 위협으로부터 우리 국토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사업 착수 10년이 지난 지금, 정조대왕급은 ‘국토 방어’가 아니라 ‘자함방어’ 목적으로 용도가 축소돼 있었던 것이다.
정조대왕급은 SM-3와 SM-6 모두 운용 가능한 레이더와 이지스 전투체계를 탑재하고 있다. 1,000㎞ 이상 거리에서 적 탄도미사일을 탐지·추적할 수 있고, SM-3 미사일을 탑재할 경우 1,200㎞ 이상 거리에서 탄도미사일 요격이 가능하다. 반면, SM-6는 속도도 느리고 사거리도 짧아 함대를 향해 똑바로 날아오는 탄도미사일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대응이 가능할 뿐, 인천 앞바다에 떠 있어도 수도권을 향해 날아오는 북한의 탄도미사일에 대한 효과적인 요격이 제한되는 무기다. 최신 이지스 베이스라인 9.C2 전투체계를 탑재하는 정조대왕함에서 SM-6만 운용하는 것은 최신·최고사양 CPU와 그래픽카드, 운영체제를 갖춘 컴퓨터로 ‘586 컴퓨터’ 시절의 게임이나 프로그램을 돌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해군참모총장은 “SM-6는 물론, SM-3도 조속히 도입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기존 세종대왕급도 SM-3·6 운용이 가능하도록 개량 사업을 추진할 것”이라며 “국회의원들도 사업 정상 추진을 위해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다. 해군은 SM-3·6 도입은 물론 기존 깡통 이지스함을 정상화시키기 위한 의지가 있음을 피력한 것이다. 실제로 해군은 지난 9월, 세종대왕급 성능개량 사업 소요를 제기하며 2035년까지 사업을 완료하겠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3척의 구축함을 개량하는 데 무려 10년의 시간이 걸린다는 말인데, 당면한 북한의 미사일 위협과 미국의 동급 구축함 개량 사업 일정 등을 감안하면, 긴급 소요 사업으로 전환해 사업 일정을 크게 앞당길 필요가 있다. 미국과 일본의 개량 사례를 봤을 때 예산만 확보된다면 성능 개량 공사에 필요한 기간은 1척에 1년이 채 걸리지 않기 때문에 미룰 이유가 없다. 또 지금은 미국이 우리 세종대왕급과 유사한 버전의 이지스함을 최신 버전으로 개량하는 사업을 대대적으로 진행 중인 시기여서, 미국과 사업 일정을 맞춰 공동발주하면 사업비용도 대폭 낮출 수 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지 못하는 국가는 국가로서의 자격이 없다. 북한이 1,000기, 중국이 최소 600기의 탄도미사일을 수십 년째 우리에게 겨누며 적의(敵意)를 드러내고 있는 상황에서도 그들을 자극해서는 안 된다며 MD 자산 도입을 가로막는 것은 우리가 먼저 방탄복을 벗으면 눈앞의 강도도 총을 내려놓을 것이라는 궤변과 다름없다. 상대의 적의가 명백하고, 우리에게 해를 끼칠 수단과 능력이 있다는 사실이 명확해진 지금, 우리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수단을 마련하는 데 더는 시간을 지체해서는 안 된다. 해군이 이지스함 도입 10년 만에 추진하는 ‘깡통 오명 벗기’에 정부와 정치권은 물론 온 국민이 힘을 모아주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