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이태원 참사 1주기인 29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시민추모대회 대신 어릴 적 다녔던 교회에서 추도 메시지를 냈다. 추모대회가 "정치 집회"라는 지적에 유가족들이 야당을 공동주최 명단에서 뺐는데도 끝내 외면한 모양새가 됐다. 광장의 경호 문제를 감안하면 윤 대통령이 참석하기 곤란한 행사라는 현실적 제약도 이유로 거론되지만, 추모의 형식과 내용 모두 국민 기대와 동떨어졌다는 지적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윤 대통령은 이날 서울 성북구 영암교회를 찾아 참사 1주기 추도예배에 참석했다고 이도운 대변인이 전했다. 윤 대통령은 추도사에서 "지난해 오늘은 제가 살면서 가장 큰 슬픔을 가진 날"이라며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이어 유가족에게 위로를 전하면서 "우리에게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야 할 책임이 있다"며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어 그분들의 희생을 헛되게 만들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영암교회는 윤 대통령이 초등학교 1학년부터 중학교 1학년까지 다녔던 곳이다. 지난해 성탄 예배 때도 이곳을 찾았다. 추도예배는 교회 신도들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이날 정해진 일정이 모두 끝난 뒤 정부와 여당, 대통령실 관계자들 위주로 참석해 별도로 진행됐다고 이 대변인은 설명했다. 신도와 국민이 없는 자리에서 추도사를 읊은 셈이다.
당초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는 18일 윤 대통령을 추모대회에 초청했고 대통령실도 참석을 진지하게 고민해 왔다. 그러나 이후 야 4당이 공동주최자로 참여해 야권 지지자들 참석을 독려하고 있다는 점이 확인되자 불참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에 유족 측은 "야당과의 공동주최는 장소 섭외 조력을 받기 위해서였고, 서울시가 협조한 만큼 야당을 제외하겠다"며 윤 대통령을 다시 초청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이날 서울광장을 찾지 않고 동네 교회로 발길을 돌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사고현장이든 서울광장이든 성북동 교회이든 희생자를 추도하고 애도하는 마음은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 공방이 난무할 수도 있는 광장의 추모대회를 피해 최선의 추모방식을 택했다는 게 참모들의 설명이다. 정치적 우려 외에 이날 행사 규모가 커지면서 윤 대통령 참석을 위한 경호 협조 등이 현실적으로 어려워졌을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반면 윤 대통령의 추도사에 직접적인 사과가 없었던 점에 비춰 '정부 책임을 희석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오늘은 애도에 집중하고 다른 이야기는 자제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말을 아꼈다. 다만 사과 문제에 대해서는 "(앞서) 윤 대통령이 네 차례, 또는 그 이상 공식적인 자리에서 사과를 했던 것 같다"고 선을 그었다.
윤 대통령이 11일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 후 '국민 소통'과 '변화'를 약속한 상황에서 이태원 참사 추모 문제는 향후 민심 회복을 위한 가늠자로 여겨져 왔다. 특히 윤 대통령은 31일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협조를 구하고, 조만간 다시 지명할 대법원장 후보자의 임명동의를 위해서라도 야당과의 협치가 절실하다.
이에 향후 윤 대통령이 유가족과 별도로 만나 추가 행보에 나설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그런 부분들은 앞으로 잘 한번 살펴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