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오후 9시 30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일대는 나들이 나온 사람들로 북적댔다. '핼러윈(10월 31일)'을 사흘 앞두고 골목 곳곳은 축제를 즐기려는 젊은이들로 활기를 띠었다. 1년 전과 다른 점은 사고를 유발할 만큼 인파가 몰리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지난해 참사 여파에도 이날 이태원과 홍대 앞 등 서울 주요 도심은 각종 분장으로 한껏 꾸민 시민과 외국인이 뒤섞여 핼러윈 분위기를 물씬 자아냈다. 우려할 법도 했지만 참사의 교훈 덕분인지 시민들은 다중밀집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했고, 경찰과 자치구도 인파 관리에 총력을 기울여 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참사의 기억을 간직한 이태원에도 다양한 코스튬을 한 시민들이 거리를 누볐다. 영화 '해리 포터'의 주인공으로 분한 이모(20)씨는 "추모도 하고 핼러윈도 즐기러 올해 처음 이태원을 찾았다"고 말했다. 김재원(23)씨도 "집이 근처라 이태원에서 자주 노는 편"이라며 별다른 거부감을 보이지 않았다.
이태원의 추모 분위기를 피하려 했는지 상대적으로 홍대 인근 거리가 더 붐볐다. 클럽 거리 일대 식당과 주점 상당수가 만석이 돼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서기도 했다. 서울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역사 안에서는 "역사가 매우 혼잡하오니 1, 9번 출구를 이용해 달라"는 안내 방송이 계속 흘러나왔다. 스파이더맨 코스튬을 착용한 이진광(29)씨는 "지난해까지 이태원으로 갔지만 사람이 많을 것 같아 올해는 홍대로 왔다"며 "당시 참사 현장에도 있었고, 분향소를 찾아 추모도 했지만 축제를 즐기는 것은 별개"라고 말했다.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시민들과 달리 경찰과 구청 공무원들은 밤늦게까지 촉각을 곤두세웠다. 참사 장소인 이태원 세계음식거리 한가운데에는 철제 펜스가 설치돼 우측통행을 하게끔 동선을 관리했고, 이태원역 인근 도로는 양방향 1차선의 차량 이동을 제한해 보행 공간을 최대한 확보했다.
좁은 골목에도 10m 간격으로 인력이 배치됐다. 경찰은 이날 이태원에만 기동대 등 400여 명의 경력을 투입했다. 용산구청 공무원들과 의용대 소방대원들 역시 안전봉을 들고 호루라기를 불며 도보순찰을 도왔다. 경찰 관계자는 "가벼운 사고도 발생하지 않게 상황을 엄격히 관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당국은 유동인구가 급증할 상황에 대비해 홍대와 강남 일대 등도 중점관리지역으로 설정한 뒤 안전관리에 힘을 쏟았다. 차보미(32)씨는 "경찰과 소방관들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순찰을 돌아 안정감이 느껴진다"고 안도했다.
흥겨움만 있었던 건 아니다. 참사 1주기를 맞아 추모 발걸음도 이어졌다. 이태원역 1번 출구에 설치된 추모 공간에선 많은 시민들이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었다. 연인과 함께 이태원을 찾은 김유신(22)씨는 "추모하고 싶은 마음에 이태원에 왔다"며 "진작 이렇게 꼼꼼히 관리했다면 안전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고 했다. 호주에서 온 클로이(32)는 "한국 여행을 왔다가 이태원에 들렀는데, 경찰이 너무 많아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인명사고는 없었으나 일부 소동이 빚어졌다. 홍대 축제 거리에선 20대 남성이 군복 차림으로 모형 총기를 들고 돌아다닌 혐의(군복단속법 위반)로 경찰에 적발됐다. 현행법상 민간인이 군복이나 군용 장구를 사용·휴대할 경우 10만 원 이하의 벌금 또는 구류 처분을 받을 수 있다. 경찰은 이 남성을 즉결 심판에 넘겼다. 경찰 관계자는 "군복 착용 및 모형 총포 등을 휴대한 다른 시민 7명도 적발해 계도 조치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