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병 전 단계라도 뇌 조직 변화 살피면 조기 진단 가능

입력
2023.10.28 09:58
[건강이 최고] 서울대·분당서울대병원, MRI 질감 분석 통해

조현병 전(前) 단계와 초기 조현병 환자라도 미세한 뇌 조직 변화를 포착하면 조현병을 조기에 진단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

권준수 서울대병원·문선영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팀이 뇌 자기공명영상(MRI) 질감 분석을 조기 조현병 환자들에게 최초로 적용해 뇌 조직을 분석한 결과다.

조현병(調絃病)은 망상·환청·논리가 없는 말하기 등의 증상이 특징이며 사회적 기능 장애를 동반한다. 발병과 함께 회백질 감소 등 다양한 뇌 조직 변화가 발견되지만, 전 단계에서 일어나는 뇌 변화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시간이 지날수록 인지 기능이 떨어질 수 있어 전 단계나 초기(4~5년 내)에 발견해 빠른 치료를 받는 게 중요하다.

연구팀은 △초발정신증군(조현병 초기 단계, 101명) △정신증 고위험군(조현병 전 단계, 85명) △대조군(147명)의 MRI 영상을 바탕으로 조현병과 관련된 뇌 영역에 대한 질감 분석(Texture analysis)을 시행했다.

질감 분석이란 MRI 영상을 구성하는 작은 3차원 단위(복셀) 중 인접한 단위들의 상호관계를 조사하여 질감 특성을 살피는 기법이다. 질감 분석을 사용하면 뇌 조직의 부피 변화나 신호 강도에 기반한 분석으로는 감지하기 어려운 미세한 변화까지 포착할 수 있다.

분석 결과, 초발정신증군은 대조군에 비해 전두엽을 비롯한 뇌 부위에서 회색질 부피와 두께가 유의하게 줄었다.

정신증 고위험군에서는 회색질 부피·두께 변화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전두엽 부위에서 ‘IMC1 질감 지표(회색질의 복잡성과 호의존 정도를 반영)’가 대조군과 초발정신증군에 비해 뚜렷이 증가했다. 복잡성이 크고 상호 의존이 적을수록 값이 증가한다.

특히 정신증 고위험군에서 증상이 심할수록 전두엽 IMC1 지표가 낮았다. 이 결과는 정신증 고위험군 단계에서 신경 가소성(可塑性)의 일종인 ‘피질 재구성’ 현상 가능성을 시사한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신경 가소성은 뇌가 환경·상황에 따라 스스로 신경 구조와 회로를 바꾸는 현상이다.

연구팀은 정신증 고위험군에서 회색질의 부피와 두께의 변화가 없더라도, 높은 민감도를 가진 ‘질감 분석’을 통해 조현병 증상에 관련된 미세한 회색질 변화를 포착해 조기 치료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문선영 교수(제1 저자)는 “이번 연구는 조기 정신증 환자의 뇌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변화를 보다 민감하게 파악할 수 있는 새로운 도구를 제시한다”고 했다.

권준수 교수는 “정신증 고위험군을 비롯한 조기 정신증에서 일어나는 초기의 뇌 구조적 변화를 제대로 이해하면 초기 진단 및 치료에 더욱 효과적인 방법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며 “질감 분석은 특히 정신증 고위험군이 정신병으로 전환하는 걸 조기에 예방하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분자 정신의학(Molecular Psychiatry)’ 최신호에 실렸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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