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가 정부 117학교폭력신고센터(117센터) 내 임금차별과 불법파견 여부에 대해 조사에 착수했다. 117센터 공동운영 부처였던 여성가족부의 돌연한 사업 불참 방침과 이로 인한 여가부 파견 상담사들의 대량 실직 위기를 계기로 불거진 노동법 위반 의혹을 확인하려는 것이다.
27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고용부 지방고용노동청은 각 지방경찰청 117센터를 상대로 고용관계 조사에 착수, 근로계약서 등 관련 자료 확보, 종사자 조사 등을 진행하고 있다. 고용부 관계자는 "아직 근로감독 단계는 아니며, 사실관계를 조사하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다.
117센터는 학교폭력 피해자 긴급 구제를 위해 경찰청·교육부·여성가족부가 2012년부터 비용을 분담해 운영하고 있는 기관이다. 이곳의 고용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여가부가 내년도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상담사 인건비 등 센터 관련 예산을 전액 삭감한 사실이 드러나면서다.
지난해 기준 전국 117센터 상담사는 총 179명으로, 경찰청 관할 55명은 정규직 경찰관, 교육부 관할 90명은 교육청에 소속된 교육공무직(대부분 무기계약직), 여가부 관할 34명은 여가부가 인건비를 지원하는 계약직이다. 여가부 관할 상담사는 지자체가 운영하고 여가부 산하기관(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이 지도·관리하는 청소년상담복지센터와 근로계약을 맺고 117센터로 파견되는 복잡한 구조로 고용됐다. 이들은 다른 부처 관할 상담사와 같은 장소에서 같은 업무를 하고도 근속수당, 연장·휴일근로수당, 가족수당 등을 받지 못했다. 최고참인 11년 차를 기준으로 여가부 관할 상담사의 월급은 교육부 관할보다 100만 원 가까이 적었다.
인력 운용 방식도 문제다. 상담사 업무 장소는 지방경찰청 내 117센터다. 상담사들은 근무조 편성, 상담내용 보고 청취, 업무 지시 등이 지방경찰청 소속 팀장을 통해 이뤄졌다고 증언하고 있다. 다른 기관에서 온 근로자가 원청에서 직접 업무 지휘를 받는 것은 '도급'과 구분되는 '파견'의 핵심 요건이다. 그렇지만 여가부 관할 상담사의 경우 실제 사용자인 경찰청과 소속기관인 청소년상담복지센터 간 파견 계약이 체결되지 않았다. 또 파견법은 파견 기간이 2년을 초과하면 원청이 근로자를 직접 고용하도록 했지만, 117센터에서는 이 또한 지켜지지 않았다.
여가부는 "파견법 위반은 없었다"는 입장이다. 여가부 관계자는 "상담사들이 연장이나 야근을 하려면 (소속기관인) 청소년상담복지센터에서 승인을 받아야 했다"고 말했다. 여가부 측이 인력을 관리·감독하며 '사용자' 역할을 한 만큼 파견이라고 볼 수 없다는 취지다.
그러나 상담사들 얘기는 다르다. A씨는 "근무 장소가 (지방)경찰청이고, 업무 지시를 한 사람도 경위·경감급 팀장"이라며 "건강검진을 가거나 휴가를 낼 때도 경찰청 팀장에게 보고했다"고 말했다. 유성규 노무법인 참터 노무사는 "불법파견 여부 판단은 실제 일을 하는 과정에서 누가 업무 명령이나 지시를 했는지를 가리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상담사들은 파견근로자가 아니라는 여가부의 주장은 앞서 117센터 예산 삭감 이유를 설명하면서 내세운 논리와 배치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여가부는 지난달 15일 예산 삭감 관련 보도설명자료를 내면서 "(사업 연장평가에서) 사업 추진에 있어 법적 근거가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았다"고 밝혔다. 평가를 담당한 조세재정연구원이 여가부의 117센터 사업 참여를 "경찰청에서 설치한 긴급전화에 대한 인력파견사업"이라고 문제 삼았기 때문에 사업 불참을 결정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여가부 스스로 상담사들을 경찰에 '파견'했음을 시인한 거 아니냐는 것이다.
사업 불참을 선언한 여가부와 이를 만류하는 경찰청·교육부 간 협의가 뚜렷한 진척이 없는 가운데, 117센터의 노동법 위반 의혹 조사에 나선 고용부나 예산안 심의·확정 권한이 있는 국회 등 제3자의 개입으로 문제가 타개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해고 위기에 몰린 상담사들은 물론이고 노동계에서는 여가부가 예산을 되살리고 상담사 직접 고용에 전향적 자세를 보여야 문제가 풀릴 수 있다고 지적한다. 유 노무사는 "불법파견이나 위장도급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라 정부가 법적 기준을 엄정하게 세울 필요가 있다"며 "이번 고용부 조사를 통해 그런 계기가 만들어졌으면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