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가는 원격 의료에 의약품 드론 배송도... 인구 감소 지역까지 촘촘한 일본 의료

입력
2023.10.30 04:30
14면
<2> 의료 취약지 지원 체계
일본 고령화·인구 감소 지역
의료 접근 가능 다양한 대책
지역 의사 양성도 일찍부터


편집자주

일본은 한국의 '미래의 거울'이란 말이 있습니다. 저출생·고령화처럼 일본이 먼저 겪은 사회·경제적 현상이 시차를 두고 한국에도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죠. 한국에서 주목하고 알아둬야 할 일본 구석구석의 이야기를 도쿄특파원이 3주마다 들려드립니다.


“주문 들어왔습니다!”

지난 24일 오후 1시 일본 나가사키현 후쿠에섬 고토시의 무인기(드론) 물류회사 ‘소라이이나’. 한 직원의 이 같은 외침에 쓰치야 히로노부 운영책임자가 스마트폰 화면을 확인했다. 후쿠에섬 북동쪽 나카도리섬의 약국에 인플루엔자 치료제를 보내 달라는 주문이다.

직원들은 시내 의약품 도매상에서 받아 온 약품을 상자에 넣고 꼼꼼히 포장했다. 상자를 탑재한 드론을 발사대에 고정한 후 큼직한 버튼을 누르니, 드론은 마치 새총을 쏜 것처럼 튕기듯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이 드론은 사전에 설정된 경로로 45분가량 비행해, 배송지인 약국 인근에 상자를 떨어뜨린 후 회사로 되돌아왔다.

도요타통상의 100% 자회사인 이 업체 직원은 총 6명. 시속 100㎞의 빠른 속도에다 비바람 속에서도 날 수 있는 미국산 드론 ‘집라인(Zipline)’을 사용해, 지난해 4월 일본 최초로 의약품 드론 배송 사업을 개시했다. 시험 비행을 포함해 현재까지 1,100회, 8만7,000㎞ 거리를 비행했고, 최근엔 하루 5, 6건씩 의약품 배송을 하고 있다.


일본 전체가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일손 부족을 겪고 있지만, 후쿠에섬과 인근 섬으로 구성된 고토시의 현황은 더욱 심각하다. 인구가 10~300명에 불과한 주변 낙도들 때문만이 아니다. 3만1,000여 명 인구인 후쿠에섬도 항구와 공항, 시청, 공립병원 등이 있는 동쪽 시내에만 사람이 모여 살 뿐, 차량으로 2시간 거리인 섬 반대편 다마노우라마치는 인구 감소가 심각하다. 고령화율(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일본 전체(29%)의 두 배인 58%에 달한다. 일손 부족이 극심한 이 섬에서 2시간씩 운전해 소량의 약품을 배송하고 돌아오는 것보다는 드론 배달이 효율적이다. 쓰치야 책임자는 “낙도에 식료품 배송 등 신사업도 다양하게 시험하면서 비즈니스 모델을 다듬어 가고 있다”며 “인구 감소나 저출생·고령화 등 사회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찾아가는 원격 진료, "여기까지 와 주다니" 호평

고토시가 올해 1월 시작한 ‘모바일 클리닉’이란 명칭의 원격진료 사업도 다마노우라마치에서 성과를 올리고 있다. 주인공은 1,300만 엔(약 1억1,700만 원)을 들여 마련한 ‘모바일 카’다. 내부엔 의사와 화면을 통해 얼굴을 보며 대화할 수 있는 원격 진료 기기가 설치돼 있다. 원격청진기와 혈당측정기, 혈압계 등 측정 기구도 있다. 환자 집으로 간호사가 이 차량을 타고 직접 찾아간 후, 화면 속 의사의 지시에 따라 환자 배에 청진기를 대는 등 보조하는 방식이다.

9월 말까지 총 126건의 진료가 모바일 클리닉을 통해 이뤄졌다. 이 중 82건은 평소 고토주오병원에서 진료하는 노나카 후미아키 나가사키대 조교수가 했다. 매주 월요일 다마노우라마치 진료소에서 출장 진료를 하는 그는 통원 환자들에게 모바일 클리닉을 권했다. 노환으로 거동이 불편한 고령 환자에겐 월 1회 진료소 방문조차 버거운 탓이다. 버스도 하루에 두세 편밖에 없다. 노나카 교수는 “집까지 찾아와 줘서 고맙다는 환자가 많다”며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병원 접근이 어려운 지역에서 적극 시도해 볼 만하다”고 평가했다.

다만 한계도 존재한다. 모바일 클리닉 차량 내부는 아직 진료실로 인정받지 못한 터라 간호사가 주사를 놓을 수 없는 게 대표적이다. 노나카 교수는 “법적·제도적 규정이 좀 더 완화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일본 지방 의료, 공공의료 역할 커

고토시는 모바일 클리닉 도입 전에도 인구가 적은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의료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공립병원인 고토주오병원을 중심으로 곳곳에 진료소를 설치하고 의사 파견 시스템을 갖춰 놓은 탓에, 일본 후생노동성 기준 ‘무의(無醫)지구’나 ‘준무의지구’가 없다. 무의지구란 반경 4㎞ 이내 50인 이상 거주자가 있는 데도,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의료기관이 없는 지역을 뜻한다. 섬에서 치료할 수 없는 긴급 환자가 발생할 경우 닥터 헬기와 소방 헬기가 이송하고, 악천후 땐 자위대 헬기까지 동원하는 등 이중 삼중의 대비 체계를 갖췄다.

고토시 사례에서 보듯, 일본 지방 의료는 지자체와 공공의료기관의 역할이 매우 크다. 일본 정부는 1956~2017년까지 11차에 걸친 ‘벽지보건의료계획’을 책정했고, 10차 계획 때부터는 각 지자체가 국가의 지시를 받아 각자 실정에 맞는 방안을 수립해 의료 공백 지역을 없애도록 했다. 이에 따라 각 지자체는 인구가 적은 지역에 진료소를 세우고, 지자체가 설립한 공립병원 등 지역 거점 병원에서 의사를 정기적으로 파견하도록 하는 등 촘촘한 의료 제공 체제를 갖췄다. 이렇게 세워진 벽지 진료소는 1,117곳(2022년 기준)에 달한다. 그 결과, 1966년 전국 2,920곳이나 됐던 무의지구는 2022년 10월 말 557개소로 급감했다.


지역 의사 확보 대책, 1970년대부터 시작

수도권 집중 현상에 따른 지역 의사 확보 대책도 일찍이 시작됐다. 1972년 도치기현 시모노시에 세워진 ‘자치의과대학’은 △졸업 후 본인 출신 지역에서 활동하고 △의료 취약지에 근무하는 의사를 양성하는 게 설립 목적이다. 총 47개의 광역지자체별로 2, 3명씩 선발해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며, 학비를 면제받는 대신 졸업 후엔 해당 지자체에서 인구가 적은 지역의 진료소나 병원에서 9년간 의무적으로 일해야 한다. 매년 의사 국가시험에서 전국 1위를 놓치지 않는 등 학생 실력도 매우 우수하다.

저출생과 수도권 집중 현상이 심화하면서 일본 정부는 특정 대학만이 아닌, 전체 의학부 입학 정원의 일부를 지역 의사로 할당하는 지역 정원제도를 도입했다. 이 제도로 입학하면 졸업 후 9년간 지역에 남아야 한다. 지역 정원제 입학 의대생 수는 2007년 183명(전체의 2.4%)에 불과했지만, 2020년 1,679명(18.2%)까지 급증했다. 연간 7,625명이었던 의대 정원이 이후 9,000명대까지 크게 늘어났는데, 증가 인원 대부분을 지역 할당 입학이 차지했다. 이렇게 확보한 인재는 지역 내 거점 병원이나 의료 취약 지역 등에 골고루 배치하도록 지자체가 지역 의대 및 병원과 ‘지역 의료대책협의회’를 구성해 협의한다.

후생노동성 관계자는 이들이 의무 기간인 9년이 지난 후에도 해당 지역에 정착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 제도도 도입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오지에서 근무해도 수준 높은 기술을 연마할 수 있도록, 지역 내 거점 병원이나 대학병원에서 연수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오지 진료소 근무 경력은 지역 거점 병원의 원장 임명 시 필수 요건이 된다.

다양한 대책을 도입하더라도 인구가 극히 적은 지역의 진료소에 매일 상주하는 의사를 두기는 힘들다. 이 경우 원격 진료 병행도 대안이 된다. 후생노동성 담당자는 “의사에게 온라인 진료에 대한 지침 및 기술에 대한 연수를 꾸준히 실시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4만7,000명의 의사가 교육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원격 진료가 대면 진료와 실제론 별 차이가 없다는 연구 결과도 나오고 있는데, 이런 연구 성과의 축적도 정부의 일”이라고 덧붙였다.


"한국, 고령화에 대비해 공립병원 지원 강화해야"

지역 의료 전문가인 이세키 도모토시 조사이(城西)대 교수는 심각한 인구 감소와 고령화에도 불구, 일본의 지방 의료 체계가 비교적 잘 작동하는 이유로 공공의료에 대한 충실한 지원을 꼽았다. 일본 지자체가 설립한 공립병원은 850여 곳으로 전체의 10%를 차지한다. 국립병원과 공적 기관이 세운 병원까지 포함하면 공공병원 수가 1,500곳을 넘어 전체의 18%에 달한다. 이들 병원은 △지역의료 지원병원 △구명·구급센터 △출산 전후 의료센터 △재해 거점 병원 △감염증 유행 시 지정의료기관 △지역 내 암 진료 연계 거점 병원 등 공공의료기관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반면 한국의 경우 지난해 기준 공공병원이 300곳도 되지 않는다. 기존 병원의 시설·인력에 대한 투자도 부족하다. 한국과 일본의 공공의료를 비교하는 논문을 쓰기도 한 이세키 교수는 “일본 정부는 지방 공립병원에 대해 후생노동성이 의료 부문을, 총무성이 운영 부문을 각각 감독하고 지방교부금을 지급하는 등 후하게 지원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국은 다르다. 이세키 교수는 “(한국의) 경기도 도청소재지인 수원의 공립병원(경기도의료원 수원병원)이 200병상 정도에 의사 수는 20명에 그친다”며 “비슷한 인구인 히로시마시의 현립병원은 의사 202명에 712병상을 갖추고 있고, 시립병원에도 743병상, 229명의 의사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제2도시인 부산도 공립병원 규모가 작고, 의사도 간호사도 부족하다”고 우려를 표했다.

한국에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이세키 교수는 “고령화가 급격히 진전되는 상황에서 공립병원이 빈약하면 나중에 문제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거동이 불편한 사람이 많아지고 인구 감소 때문에 교통편도 줄어들면, 서울 대형병원으로 이동하기 힘들어진다. 그는 “지방 의사 양성도 매우 중요하지만, 이들이 일할 공립병원의 규모를 키워 고도화한 의료를 제공해야 의사가 모인다. 고령화의 미래도 대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고토= 최진주 특파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