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세 금감원장’의 검사 본색

입력
2023.10.26 16: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일거수일투족이 워낙 주목을 받아서 그렇지,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행보 또한 만만찮게 저돌적이다. 한 장관이 정치인보다 더 정치적인 발언을 쏟아내듯, 이 원장은 금감원장 권한을 거침없이 넘어선다. 검사 출신 윤석열 사단 대표주자들의 닮은꼴 행보다. 역대로 이렇게 존재감 넘치는 금감원장은 없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반관반민(半官半民) 조직인 금감원은 법에 따라 정부 부처인 금융위원회의 지도와 감독을 받는다. 금융위가 금융정책을 만들면, 금감원은 이에 따라 검사와 감독을 집행한다. 이 원장은 월권 논란에 여러 차례 휩싸였다. “연내 공매도 규제 완전 해제” “은행 완전 경쟁 체제 검토” 등을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모두 금융위 영역 침범이다. 금융사 최고경영자(CEO)들을 대거 동반하고 해외 기업설명회(IR)도 자주 다닌다. 금융사 지원사격일 수도 있긴 한데, 심판과 선수의 동행이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많다.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가 지난 23일 금감원 자본시장특별사법경찰(특사경)에 공개 소환되며 포토라인에 섰다. 특사경은 금융 범죄에 한해 경찰과 같은 수사 권한을 행사할 수 있지만, 2019년 출범 후 이런 ‘대어’는 없었다. 검찰조차 피의자 보호 차원에서 없앤 포토라인을 굳이 만든 건, 이 원장의 ‘과시욕’ 때문일 것이다. 특사경은 26일 카카오 임직원뿐 아니라 법인까지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카카오 법인이 벌금 이상 형을 받으면, 카카오뱅크 대주주 자격을 잃는다.

□학습능력이 뛰어나다지만, 평생 검사만 해온 그에게 금융은 낯선 분야일 수밖에 없다. 당연히 특사경에 애착이 클 것이다. 직원 15명의 소규모 조직이고 서울남부지검 지휘를 받지만, ‘특수통’ 검사의 존재감을 유감없이 드러낼 수 있다. 이번 수사를 사실상 진두지휘했다는 이 원장은 심지어 카카오에 SM 인수를 자진 포기하라는 우회적인 압박까지 했다. 카카오의 시세조종이 괘씸하긴 하지만, 금감원장이 할 수 있는 얘기는 아니다. 김 창업자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여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기세로 보면 조만간 영장을 넣을 거란 관측이 많다. 실세 금감원장이 검사 본색을 드러내니 무섭긴 무섭다.

이영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