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옥빈(36)은 22일 종방한 tvN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 시리즈를 촬영하다 코뼈가 부러졌다. 타곤(장동건)을 구하러 말을 타고 달려가는 전투 장면을 찍다 검에 부딪힌 탓이다. 김옥빈이 연기한 배역은 첩자로 자라 무술에 능한 아스달 왕국의 첫 왕후 태알하. 주역 배우가 다친 위기 상황에 촬영은 바로 중단됐다. 부러진 코뼈가 붙기를 기다리는 김옥빈의 걱정은 따로 있었다. 그는 작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25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김옥빈은 "'저 다쳤다고 액션 장면 빼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며 "그랬더니 작가님이 크게 웃으며 '빵' 터지시더라"고 말했다.
'아스달 연대기'에서 다친 뒤 찍은 시즌2 '아라문의 검'에서 김옥빈은 그의 바람대로 팔뚝 길이만 한 검을 쥐고 바닥을 구르며 반란군들과 맞선다. 태권도와 합기도 유단자인 여배우는 늘 액션 연기에 '진심'이다. 영화 '악녀'(2017)에서 김옥빈은 달리는 버스 지붕을 붙잡고 매달려 가는 장면과 3층 건물에서 유리창을 부수고 떨어지는 장면을 모두 대역 없이 촬영했다. "왜 어려운 것만 골라서 하냐고요? 재미있어서요. 제가 고생해야 하는 팔자인가 봐요, 하하하."
김옥빈은 '아스달 연대기' 시리즈에서 야심으로 가득 차 해씨 가문의 장녀에서 왕후로 성장한 배역을 묵직하게 연기했다. 드라마에서 그는 정치적 욕망을 위해 아버지를 죽이고 남편도 죽이려 한다. 그는 그렇게 지독한 모습으로 극의 긴장감을 높였다. 다소 어려운 세계관 등으로 '아스달 연대기'가 구설에 오른 뒤 다른 주연 배우인 송중기와 김지원이 시즌1을 마치고 이 작품을 떠날 때 김옥빈은 시즌2까지 완주했다.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 태알하가 자라온 환경과 주변 인물과의 관계성 등이 독특해 끌렸어요. 태알하는 어린 시절 온전한 사랑을 받지 못한 채 부모에게서 세력을 키우기 위한 도구(첩자)처럼 이용만 당하죠. 그러다 사랑 때문에 이도저도 못하는 행동도 하고요. 어딘가 마음이 고장 난 것 같지만 애잔하기도 하더라고요. 캐릭터를 좋아하다 보니 어떻게든 제가 마무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라문의 검'은 '아스달 연대기'가 2019년 공개된 뒤 4년 만인 올해 9월부터 방송됐다.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시즌2 제작은 일부 차질을 빚었다. 방송에 우여곡절을 겪은 이 시리즈는 그간 한국에서 보지 못한 선사시대의 신화적 서사를 토대로 국가와 문명의 탄생을 실험적으로 보여줬지만 대중적 호응은 뜨겁지 않았다. 시즌1에서 6~7%대를 오가던 시청률은 시즌2에서 4~5%대에 그쳤다. 김옥빈은 "실험적인 작품이라 마니아층은 생겼지만 시청자 유입이 쉽지 않았다"며 "다만, 제겐 드라마가 끝나고 계속 돌려보게 하는 작품이고, 그렇게 '잘 만든 드라마'로 이 작품이 두고두고 회자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2005년 드라마 '하노이 신부'로 데뷔한 김옥빈은 금기를 부수고 배우로 입지를 넓혀 왔다. 2009년 박찬욱 감독의 영화 '박쥐'에서 신부를 유혹하는 팜 파탈 태주를 파격적으로 소화한 그는 스페인 시체스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2014년 드라마 '유나의 거리'에서 소매치기 역을 맡아 비루한 삶의 그늘을 들췄다. 두 작품을 통해 김옥빈도 배우로 성장했다.
"'박쥐' 전엔 배우로 그냥 '애기'였죠. 미숙했던 시절, 박찬욱 감독이 꾸린 좋은 현장에서 송강호 선배 등의 연기를 곁눈질로 보면서 많이 배웠어요. '유나의 거리'도 7개월 동안 잠도 제대로 못 자면서 찍었는데 워낙 좋은 선배님들이 많아 자극이 많이 됐고요. '배우고 싶다'는 목마름이 컸거든요."
김옥빈은 데뷔 초엔 배우 유망주는 아니었다. '얼짱' 대회 출신으로 '여고괴담4-목소리'(2005)에서 여고생 귀신을 연기해 '깜짝 스타'로 뜨고 질 줄 알았던 그는 철거민 문제를 다룬 영화 '소수의견'(2015) 등에 출연하면서 변화를 거듭했다. '박쥐'로 해외 유명 영화제에서 연기상을 받은 뒤에도 안주하지 않았다. 그는 발성부터 다시 배웠다. '아스달 연대기' 시리즈에서 그가 아들을 둔 왕후 역을 맡아 안정적으로 연기를 소화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넷플릭스 '연애대전'(2023)에서 멜로 연기를 하는데 극 분위기에 맞게 발음을 구사하고 싶더라고요. 내가 자연스럽다고 생각해도 다른 사람이 듣기엔 부자연스러운 경우가 많잖아요. 그래서 발성과 발음을 따로 배웠어요. 그렇게 훈련받은 게 '아스달 연대기' 시리즈에 도움이 됐고요."
'아스달 연대기' 시리즈를 마친 김옥빈은 차기작을 고르며 또 다른 변화를 고민하고 있다. 강한 캐릭터 연기로 정평이 났지만 그는 "아직 부족하다"고 했다. "더 강렬하게 100% 폭발할 수 있는 배역을 맡고 싶다"는 게 그의 말이다.
"요즘 어떻게 잘 늙을 수 있을까가 제일 큰 고민이에요. 단순히 나이 문제를 떠나 배우로서 더 익고 싶거든요. 그래서 요즘 선배들을 더 연구하고 있어요,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