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만날 수 없다. 도시를 떠나 외딴 시골에서 살아야 한다. 어머니를 향한 마음이 사무칠 때 초자연적 존재를 만나면서 예상치 못한 모험을 하게 된다. 일본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바람이 분다’(2013) 이후 10년 만에 내놓은 신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도입부 내용이다. 미야자키 감독 팬들은 ‘이웃집 토토로’(1988)를 떠올릴 만하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는 미야자키 감독의 전작들을 되새기게 하는 대목들이 곳곳에 있다. 하지만 진부하지 않다. 익숙하면서도 새롭다.
소년 마히토가 주인공이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다. 마히토의 어머니는 폭격으로 불이 난 병원에서 숨진다. 마히토와 아버지는 도쿄에서 어머니의 고향으로 거처를 옮긴다. 마히토는 그곳에서 지독한 외로움을 겪는다. 집 근처에는 베일에 싸인 탑이 있다. 마히토는 기이한 행태를 보이는 왜가리에 이끌려 탑에 들어가고, 현실과 다른 새로운 세상과 접하게 된다.
이야기 전개 방식은 고전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1865)와 고전영화 ‘오즈의 마법사’(1939)를 연상시킨다. 어린 주인공이 무언가를 따라갔다가 환상의 세계에서 모험을 겪는 과정이 닮았다. 미야자키 감독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을 떠올리게도 한다. 세계어린이명작소설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평가받는 미야자키 감독다운 서사다.
마히토가 접한 또 다른 세상은 죽음의 기운이 어른어른하다. 펠리컨은 먹이를 찾지 못해 인간까지 위협한다. 거대한 앵무새들은 전체주의체제 속에 살며 ‘인간사냥’을 하려 한다. “이 세계를 더 평화롭게 만들 수 있지”라는 대사, 악으로부터 자유로운 돌이라는 설정이 등장하기도 한다. 미야자키 감독 전작들을 관통했던 생태와 반전 메시지가 담겨 있다.
미야자키 감독 애니메이션 중 본인의 삶이 가장 많이 스며 있는 작품이다. 미야자키 감독은 어린 시절 공습을 피해 도쿄를 떠나 시골에서 지냈다. 그의 어머니는 오랜 기간 몸져누워 지냈고, 감염 위험 때문에 자식들을 자주 만날 수 없었다. 상세히 묘사되진 않으나 마히토의 아버지는 군수용 비행기를 만드는 것으로 보인다. 미야자키 감독 아버지 일가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군용기 부품을 생산ㆍ조립하던 미야자키항공흥학을 운영했다. 미야자키항공흥학은 당시 일본 양대 항공기 제조사였던 나카지마비행기의 하청업체였다. 마히토의 아버지는 딱히 호전주의자는 아니나 전쟁특수를 즐기는 것으로 표현된다. 미야자키 감독의 아버지는 종전 후 옛 호시절을 그리워했다고 한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미야자키 감독은 여전히 눈길을 사로잡는 화면들을 빚어낸다. 완벽주의자라는 수식으로는 부족하다. 1940년대 초반 일본의 풍광, 거칠게 파도치는 또 다른 세계의 바다, ‘벼랑 위의 포뇨’(2008) 속 사람 닮은 물고기를 연상시키는 ‘와라와라’라는 존재 등에 감탄하다 보면 125분이 극장 밖보다 빠르게 지나간다.
일본 작가 요시노 겐자부로의 동명소설(1937)이 원작이다. 15세 소년의 성장기를 담은 소설이다. 미야자키 감독은 소설에서 제목과 주제의식만 빌려오고 새로운 이야기를 스크린에 그려낸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예매 표만 25만 장(25일 오후 4시 30분 기준)이 넘는다. 비수기로 꼽히는 10월 하순 극장가에서 이례적인 예매량이다. 미야자키 감독 팬들의 기대감이 반영된 수치다. 25일 개봉했다. 전체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