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를 계기로 촉발된 국민의힘의 혁신 작업이 시작부터 산으로 가는 것 아니냐는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인요한 혁신위 출범 이틀 만에 김기현 대표의 직할기구나 다름없는 공천기획단 등의 조기 출범이 예고되며 혁신 동력이 분산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 때문이다.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내비치고 있는 '영남 중진 물갈이론' 역시 수직정 당정관계라는 민심 이반의 핵심 요인과 동떨어진 처방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김 대표는 다음 주쯤 공천기획단과 인재영입위를 각각 출범시킬 예정이다. 예년에 비해 약 일주일에서 두 달 이상 출범 시점을 앞당긴 것이다. 공천기획단은 TK(대구·경북) 출신 이만희 사무총장이 단장을 맡을 가능성이 높다. 인재영입위도 김 대표의 직할 기구에 가깝다.
혁신위와 공천기획단, 인재영입위가 동시에 가동되면서 공천 문제를 직간접적으로 다룰 것으로 보인다. 혁신위가 전권을 갖고 공천 혁신 방안을 구상하는 것에 비해 여러 조직이 공천 논의를 분점하는 것은 밀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당 핵심 관계자는 "혁신위가 불편할 수밖에 없는 김 대표가 직할 조직을 통해 견제에 나서려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비윤석열계인 천하람 국민의힘 순천갑 당협위원장도 이날 SBS 라디오에서 "그런 식으로 간다면 혁신위의 운신의 폭은 더 좁아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다만 김 대표 측은 이에 "세 조직이 서로 역할 분담을 잘하면 문제 될 게 없다"고 일축했다.
인 위원장이 혁신 대상으로 연일 영남 기득권을 거론하는 것을 두고도 의견이 분분하다. 인 위원장은 앞서 "낙동강 하류 세력은 뒷전에 서야 한다"며 영남 중진 물갈이론에 힘을 싣는 듯한 발언을 했다. 이날도 취재진에게 "(당에) 좀 더 다양성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이야기를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호남 출신인 박은식 호남대안포럼 공동대표, 김준용 국민노조 사무총장 등이 혁신위원 후보로 거론되는 것과도 맥이 닿아 있다. 인 위원장의 혁신위원 제안을 거절한 천하람 당협위원장도 호남이 근거지다. 그 밖에 윤주경·전주혜·조정훈·한무경 비례대표 의원, 김예령 대변인 등이 혁신위원 후보군으로 거명되고 있다.
하지만 강서구청장 보선에서 확인된 민심 이반이 영남 중진 의원들 탓이냐는 반론도 나오고 있다. 이준석 전 대표는 페이스북에 "국민들은 이번에 중진의원들을 심판한 게 아니다. 국민이 바뀌어야 된다고 지목하는 대상은 한 사람이다"라며 윤 대통령 책임론을 강조했다. 유승민 전 의원도 MBC라디오에서 △윤 대통령의 잘못된 민생 정책과 지나친 이념 강조 △국민의힘이 이러한 대통령의 실책을 전혀 견제하지 못하고 끌려다닌 점을 꼽으며 "이런 문제를 피해 가면서 다른 이상한 데를 자꾸 건드린다면 진짜 혁신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인 위원장은 이러한 지적을 의식한 듯 "당대표는 물론이고 기회가 주어지면 대통령하고도 거침없는 얘기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진복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이날 인 위원장에게 윤 대통령의 축하 난을 전달한 뒤 "두려움을 깨기 위한 혁신위를 만들어줄 것이라고 기대한다"며 힘을 실어주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