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괭이에 맞은 흉터가 아직도 있어요. 한 방에 25~30명씩 앉아있는데 (매 맞는) 소리만 들려도 오줌을 흘리고 공포였죠." (고 이대준씨·선감학원 1964년 입소)
"탈출하다 죽은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많아요. 누가 죽으면 절차 다 무시하고 가마니에 둘둘 말아서 직접 묻었어요." (김영배씨·선감학원 1963년 입소)
서해안 외딴 섬에 설치됐던 아동 강제수용소. 선감학원 피해 생존자들이 한국일보 영상채널 '프란'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다. 1942년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가 세운 선감학원은 광복 후에도 살아남아, 1982년까지 부랑아 갱생·교육을 명분으로 아동 청소년을 강제로 격리 수용한 시설이었다. 원생들은 강제노역에 동원되고 성폭행과 고문 등 심각한 인권 침해를 당했다.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25일 경기 안산시 선감동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선감학원 폭력에 희생된 피해자 유해 발굴 현장을 최초로 공개했다. 진실화해위 차원의 첫 인권 침해 사건 발굴 현장이기도 하다.
2차 유해 발굴은 선감동 일대 분묘 40기에서 이뤄졌다. 이곳엔 유해 150여 구가 묻힌 것으로 추정된다. 유해 발굴은 2020년 피해자 167명이 "선감학원에서 심각한 인권 침해를 당했다"며 진실화해위에 진실 규명을 신청하고, 진실화해위가 이듬해 10월 "중대한 인권침해가 발생했다"고 판단,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에 후속조치를 권고하며 시작됐다. 앞선 1차 발굴은 지난해 9월 진행됐다.
발굴 결과 40기 중 15기에서 유해와 유품이 발견됐다. 치아 210점, 금속고리 단추, 직물 끈 등 유품 27점이 수습됐다. 감식을 담당한 박선주 충북대 명예교수는 "치아의 발달과 마모 정도를 보면 12~15세 정도 아동으로 추정된다"고 분석했다. 진실화해위는 분묘 크기와 매장 형태를 고려해 몸집이 작은 아동들이 집단 가매장된 것으로 봤다.
암매장 후 최소 40년이 흐른 데다 피해 원생들이 7~18세로 어려, 일부 분묘에선 유해가 발굴되지 않았다. 토양의 산성도와 습도가 높고 가매장 형태로 암매장돼, 부식 정도가 심하다는 게 진화위 측 설명이다. 김영배 선감학원 아동 피해대책협의회 회장은 "그나마 흔적을 알 수 있는 유해인 치아가 갈수록 부식되는 걸 직접 확인하니 가슴이 미어진다"며 "이번 시굴을 계기로 국가와 지방정부가 신속히 나서서 선감학원 일대의 전면적 유해 발굴에 나서주길 요청드린다"고 말했다.
공식 기록에 의한 선감학원 원생 사망자는 24명에 불과하지만, 실제 희생자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두 차례 발굴을 통해 이미 45기의 암매장 묘에서 유해와 유물이 수습됐기 때문이다. 선감학원 원아 대장에 따르면 최소 834명의 원생이 견디지 못하고 탈출을 시도했는데 선감학원이 고립된 섬(선감도)에 있는 탓에 상당수가 탈출 과정에서 익사한 걸로 보인다.
진실 규명을 위한 유해 발굴은 여전히 더디다. 진실화해위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담당 부처인 행정안전부와 선감학원 운영 주체였던 경기도에 신속한 유해 발굴 추진 및 추모공간 마련을 권고했지만 이행되지 않았다. 올해 초엔 유해 발굴을 위해 경기도를 '유해발굴 자치단체 보조사업자'로 선정하고 1억 5,000만원을 지자체에 지원하기로 했는데 경기도는 이마저도 반려했다.
진실화해위는 시굴 결과를 반영해 12월 2차 진상규명 결과를 발표하고 경기도에 전면 발굴을 재차 권고할 계획이다. 이상훈 진실화해위 상임위원은 "국가와 지자체에 권고한 사과와 실질적인 책임 이행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