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항아리 열풍 이유

입력
2023.10.25 17:33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국보급 조선백자 달항아리가 34억 원에 낙찰됐다. 국내 경매 최고가다. 서울옥션에 따르면 47.5㎝ 높이의 이 백자는 24일 진행된 미술품 경매에서 2019년 6월 달항아리 경매 때 낙찰된 31억 원 기록을 경신했다. 높이 40㎝ 이상 백자는 왕실 행사에 주로 사용된다. 이번 작품은 풍만한 양감과 꾸밈없는 형태, 유백색 피부가 돋보이는 데다, 큰 크기에도 전체 비례가 적당하고 안정감이 느껴지는 수작으로 평가됐다. 달항아리는 국보로 지정된 작품이 3점뿐이고, 보물까지 포함해도 20여 점에 그친다.

□ 세계시장에서도 달항아리는 주목받고 있다. 천년 전 백제 여인이 부른 “달하 높이곰 도다샤/어기야 머리곰 비치오시라”(정읍사)라는 말처럼 달을 닮은 항아리가 국제무대에 높이 뜬 것이다. 올해 3월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와 9월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18세기 전반쯤 제작된 달항아리가 각각 약 60억 원, 47억 원에 낙찰됐다. 둘 다 이번 국내 경매보다 높이가 작은 것들이다. 초고가에 거래되는 달항아리 다수는 일본인이 보유하고 있다.

□ 달항아리 이름을 붙인 사람은 서양화가 김환기(1913~74) 화백이다. 종로화랑을 경영하며 백자기들을 사들였고, 말년에 뉴욕에 거주하며 한국정서를 담은 달항아리 그림을 남겼다. ‘일본의 간송 전형필’로 불린 재일동포 1세대 고 정조문 선생이 조선 문화재를 수집한 계기도 달항아리였다. 교토 고미술품 거리를 걷다가 순백의 도자기에 이끌린 그는 당시 돈으로 집 두 채 값인 달항아리를 할부로 구입했다.

□ 달항아리는 하나가 아니라 두 개의 몸을 합체한 것이다. 몸체가 너무 커서 빚는 과정에 백토가 쉽게 무너져서다. 가운데 띠 모양의 접합자국이 보인다. 완전한 원형이 아니라 일그러지기도 한다. 비정형의 매력이나 소박미로 일컫는 이유다. ‘단순한 것이 더 아름답다(Less is more)’로 설명되는 현대미술의 미니멀리즘에 부합해 현대인의 감성을 자극한다. 이색전시회도 잇따른다. 야외에서 ‘불멍’(불을 바라보며 멍 때리기)처럼 미술관에서 ‘달멍’을 실천하는 관람객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달항아리가 보여주는 넉넉함과 무심(無心)의 미학이 스트레스 탈출에 특효약이라는 반응이다.


박석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