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브라질에서 열린 하계 리우올림픽 당시 펜싱 종목의 남자 에페 개인 결승전. 펜싱 강국인 헝가리의 베테랑 검객 제자 임레와 맞붙은 한국의 대표팀 막내 박상영은 9대 13으로 뒤지고 있었습니다.
스무 살의 박상영은 차분히 주문을 외웠습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후우, 할 수 있다."
숨을 고른 후 돌입한 마지막 3세트 경기. 10대 14, 패배의 벼랑까지 몰렸던 박상영은 기적처럼 점수를 15대 14로 뒤집었습니다. 믿기 힘든 역전승으로 꿈에 그리던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할 수 있다' 신드롬의 주인공도 됐죠.
'할 수 있다'는 다짐. 단순한 자기 최면일 뿐인지도 모를 이 한마디 한마디는 어떻게 대역전극의 기적을 낳았을까요. 심리학계에서는 이를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라고 부릅니다. 누군가에 대해 긍정적으로 기대·신뢰·예측을 제공하면 상대방은 그에 부응하는 행동을 하면서 실제로 기대가 충족되는 현상을 뜻합니다.
이 용어는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했는데요. 조각가 피그말리온은 매우 아름다운 조각상을 지었는데, 자기가 만든 여인상의 아름다움에 빠져 사랑하게 됐습니다. 피그말리온이 조각상에 갈라테이아라는 이름도 짓고 갈라테이아가 사람이 되길 해달라고 진심으로 기도하자, 이를 본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갈라테이아를 사람으로 만들어줬습니다.
이와 비슷한 '로젠탈 효과(Rosenthal effect)'도 있습니다. 미국의 교육학자 로버트 로젠탈은 한 실험을 실시했는데요. 무작위로 뽑은 학생들에게 교사는 응원과 격려, 기대의 말을 계속 건넸습니다. 그러자 학생들은 이전과 다른 노력을 기울였고, 성적도 덩달아 향상했다는 결과를 얻었습니다.
피그말리온 효과 그리고 로젠탈 효과 모두 긍정적인 믿음, 관심, 의지, 긍정, 기대가 실질적으로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 같은 현상은 '자기충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sy)'과도 맥락이 닿아 있습니다. 다른 말로 자기실현적 예언, 자성예언이라고도 하는데요. 미국의 사회학자 윌리엄 아이작 토머스가 처음 발견하고 미국의 사회학자 로버트 머튼이 대중화한 이론입니다. 어떤 상황을 현실로 규정하면, 결과적으로도 이런 상황이 현실이 된다는 걸 말합니다.
일이 잘될 것으로 예측하면 잘되고, 안 될 것으로 기대하면 안 되는 경우가 대표적이죠. 인기예능이었던 MBC '무한도전'에서 유재석과 이적이 부른 '말하는 대로'의 노래가 이와 똑같은 효과를 묘사합니다. "말하는 대로 / 말하는 대로 / 될 수 있다곤 / 믿지 않았지 / 믿을 수 없었지”라고 자신의 가능성을 부정하던 무명시절의 유재석이 “말하는 대로 / 말하는 대로 / 될 수 있단 걸 눈으로 본 순간 믿어보기로 했지 / 마음먹은 대로 / 생각한 대로 / 할 수 있단 걸 / 알게 된 순간 고갤 끄덕였지"라고 깨달으며 국민MC 유재석으로 성장한 이야기를 다루죠. 박상영이 사전적인 자기암시로 스스로에게 금메달의 성공을 가져다준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혹시 당신도 막다른 골목에 몰려 있나요? 그렇다면 속는 셈 치고 자기 자신에게 "할 수 있다"고 외쳐보면 어떨까요. 물론 자기를 기만 또는 합리화하는 무조건적인 긍정 주문을 하자는 게 아닙니다. 끈질긴 노력과 훈련이 밑바탕 된 상태에서 해야 자기충족적 예언이 현실이 될 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