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DI와 현대자동차가 처음으로 전기차 배터리 공급 계약을 맺었다. 올 들어 차량용 인포테인먼트용 반도체 협력에 이어 이재용 삼성그룹 회장과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인연이 배터리 분야로 넓어졌다. 그동안 배터리 관련 거래가 없었던 두 회사는 이번 계약을 통해 유럽 전기차 시장 공략은 물론 미래차 협력에도 속도를 내겠다는 계획이다.
삼성SDI는 2026~2032년 7년 동안 현대차가 유럽에서 만들 전기차 50만 대에 들어가는 배터리 공급 계약을 맺었다고 23일 알렸다. 삼성SDI의 유럽 생산 기지인 헝가리 공장에서 만드는 네모난 모양의 6세대 배터리 P6를 현대차의 유럽 공장에 보낼 예정이다.
4월 중국에서 열린 '오토상하이 2023'에서 첫선을 보인 P6는 2024년 본격 생산에 들어가는 제품이다. 니켈·코발트·알루미늄(NCA) 양극재의 니켈 비중을 91%로 높이고 음극재에 독자 특허 실리콘 소재를 적용해 에너지 밀도를 극대화한 제품이라는 게 삼성SDI 설명이다. 그동안 파우치형 배터리를 주로 썼던 현대차는 삼성SDI의 각형 배터리를 활용, 폼팩터(배터리 형태) 다양성을 높이고 배터리 내구성을 강화할 수 있게 됐다.
이번 계약은 삼성과 현대차 그룹 간의 '미래차 동맹'이 반도체에 이어 배터리 분야까지 확장됐다는 데 의미가 크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SDI와 현대차는 앞서 2020년 이재용 회장과 정의선 회장의 만남을 계기로 차세대 전기차 배터리 개발 관련 협력을 진행해 왔다. 당시 정 회장은 충남 천안시 삼성SDI 천안사업장을 찾아가 전기차 배터리 개발·생산 현장을 둘러보고 이 회장과 차세대 배터리 사업에 관한 의견을 나눈 것으로 전해졌다.
3년 전 모두 부회장 신분으로 만났던 두 총수는 이제 각 그룹의 회장으로 미래 협력을 도모하고 있다. 앞서 삼성전자가 현대차에 메모리 반도체와 차량 인포테인먼트용 반도체(엑시노트 오토 V920)를 공급하기로 하면서 두 기업 간 협력의 물꼬를 텄는데 이번 배터리 공급을 계기로 협력 폭을 넓히고 차세대 배터리 플랫폼 선행 개발 등에 대한 추가 협력 가능성도 높였다.
프리미엄 배터리로 승부하고 있는 삼성SDI는 앞으로 현대차의 고부가가치 시장 확장에 힘을 보태겠다는 뜻을 전했다. 최윤호 삼성SDI 대표이사 사장은 "글로벌 자동차 산업을 이끄는 현대차와 전략적 협력의 첫발을 내디뎠다"며 "삼성SDI만의 초격차 기술 경쟁력과 최고의 품질로 장기적 협력 확대를 통해 현대차가 글로벌 전기차 시장 리더십을 강화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