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터리 한국 유물 슬그머니 내렸다…한국 예산 9억 들인 독일 전시, '무성의'

입력
2023.10.19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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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대표 박물관 훔볼트포럼 '한국유물 특별전'
"기본정보도 틀렸다" 논란에... 서둘러 '뒷수습'

독일에서 열리는 '한국 유물 특별전'이 빈축을 사고 있다. 한국과 독일의 수교 140주년을 기념해 한국 전통과 문화를 소개한다는 취지에서 기획됐지만 일본 장신구로 추정되는 물품을 한국 비녀로 소개하는 등 기본 정보조차 틀린 유물이 전시된 탓이다. 논란이 일자 일부 전시품은 뒤늦게 제거됐다.


"K컬처 뿌리 알릴 것" 했지만... 민망한 오류에 망신

문제의 전시는 독일 베를린의 훔볼트포럼에서 지난 12일(현지시간)부터 내년 4월 21일까지 6개월간 열리는 '아리아리랑'이다. 19, 20세기 독일인이 수집한 한국 생활용품과 장신구 등 소장품 160여 점으로 구성됐다.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는 주독일한국문화원(문화원)을 통해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양국 수교의 역사와 의미, 케이컬처(K-Culture) 뿌리인 전통문화를 알리는 전시"라고 홍보했다.

그러나 전시품엔 오류가 상당했다. '물 긷는 여인'(Water Bearer)이라는 제목의 흑백 사진이 대표적이다. 사진 속 여성은 양쪽 가슴을 드러내고 항아리를 머리에 인 채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1904~1907년 중국 내 독일 대사·영사관에서 근무하며 아시아 작품을 수집한 아돌프 피셔가 1905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촬영했을 것이란 설명이 달려 있지만, 해당 사진은 일본인이 촬영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일본인이 운영하던 경성사진관이 1907년 발행한 '한국풍속풍경사진첩'에 같은 사진이 수록돼 있다. △일본 여성의 머리 장식인 간자시(簪)로 추정되는 유물은 20세기 초 조선 여성이 사용한 비녀로 소개돼 있다.

이러한 오류는 훔볼트포럼이 '제국주의적 역사에 대한 반성을 토대로 해당 문화의 시각과 고유성을 존중하겠다'는 기치를 걸고 조성된 장소라는 점과 배치된다. 훔볼트포럼은 매년 300만 명 이상이 찾는 독일의 대표 명소이다.


한국 예산으로 마련한 전시... 논란 일자 뒤늦게 "추가 검증"

전시엔 한국 정부 책임이 크다. △전시 주최는 문체부와 문화원이고 △비용도 한국 정부 예산으로 쓴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김경협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문체부 등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2021년 12월 훔볼트포럼 측과 3년 계약을 체결하며 48만 유로(약 6억8,700만 원)를 일괄 지급했다. 전시 큐레이터 임금도 포함된다. 이번 특별전엔 2억5,000만 원이 더 투입됐다. △훔볼트포럼은 올해 3월 한국 국립중앙박물관과 문화원에 전시 관련 보고를 제출하고, 박물관 소유 작품 4점을 공동 전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검증 책임에서도 자유롭지 않다.

한국 정부는 추가 검증을 통해 필요한 조치를 하겠다는 입장이다. 문체부는 "16개 작품에 대해 추가 검증을 진행 중"이라고 19일 한국일보에 전했다. 18일 방문 당시 '한국 비녀'로 소개된 유물은 이미 전시장에서 사라져 있었다.

베를린= 신은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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