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하기에 얼마나 좋은지 몰라. 채광 좋고, 전망 좋고, 무엇보다 쾌적해서 좋고. 시야가 탁 트여서 동네가 다 내려다보인다니까.”
17일 서울 강동구 고덕동 시립강동실버케어센터에서 만난 91세 강모 할아버지가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는 드넓은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따뜻한 가을 햇살을 만끽하고 있었다. 강동실버케어센터는 이날 공식 개원했지만 6ㆍ25 전쟁 참전 용사로 치매를 앓고 있는 강 할아버지는 지난달부터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치매 환자는 낯선 장소에 가면 불안이 심해져 증상이 나빠지기도 하지만, 편리한 시설과 헌신적인 요양보호사들 덕분에 그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금세 적응했다. 개원식을 위해 맵시 있게 넥타이를 착용한 강 할아버지는 평소에도 ‘멋쟁이’로 통한다고 한다.
강동실버케어센터는 서울시가 사업비 224억 원을 투입해 새로 건립한 치매 전담형 시설이다. 지상 3층ㆍ정원 117명 규모로, 입주식 요양원(89명)과 등ㆍ하원식 데이케어센터(28명)를 갖추고 있다. 모든 공간은 치매 어르신 인지능력과 정서를 고려해 디자인됐다. 일례로 복도 바닥에 그려진 노랑, 주황, 하늘색 선을 각각 따라가면 침실 여러 개와 공동거실로 구성된 생활공간 3곳으로 연결되는데, 각 공간은 벽, 가구, 블라인드 색깔을 바닥 선 색깔과 똑같이 통일했다. 어르신들이 직관적으로 공간과 방향을 인식하도록 돕기 위해서다.
2층 물리치료실은 어르신들이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다. 재활 치료를 하고 마사지를 받으며 활력을 얻고 재미를 느끼기 때문이다. 내년에는 보행 재활 로봇도 들여올 예정이다. 다리에 착용하는 기계가 무게중심 이동과 하지 체중 부하를 보조해 정상 걸음을 걷도록 도와준다. 앉은 자세에서 팔로 기계를 움직여 모니터 속 물고기 잡기 놀이를 하며 어깨와 팔 근력 재활을 할 수 있는 로봇도 있다.
생활공간에도 다양한 돌봄로봇이 도입될 계획이다. 스스로 식사를 하기 어려운 어르신은 팔을 기계에 끼우면 숟가락질이 편해지는 식사 보조 로봇을 내년부터 이용할 수 있다. 타 시설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던 배설케어 로봇은 당장 올해부터 시범 운영된다. 기계가 대소변을 빨아들이고 세정과 건조까지 해 줘서 요양보호사의 업무 부담이 경감될 뿐 아니라, 어르신들은 타인에게 몸을 맡겨야 하는 수치심을 내려놓을 수 있다.
요양보호사 송선화(57)씨는 “새 기계들이 너무 신기하다”며 “어르신들 엉덩이 짓무름도 예방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흡족해했다. 또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의 몸을 일으키거나 자세 변환을 하다가 요양보호사들도 허리, 손목, 어깨를 종종 다치는데 돌봄로봇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작동법도 간단해서 배우기 쉽다. 빨리 활용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현재 서울에 공공실버케어센터는 강동까지 포함해 10곳이 있다. 하지만 고령화로 급격히 늘어나는 수요를 감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지난해 12월 기준 노인요양시설 수요자 규모 대비 시설 정원 충족률은 69.4%에 그친다. 앞서 개원한 다른 센터들은 3년 기다려도 입소하기 힘들 정도다. 강동센터도 개원 전부터 입소 정원이 마감됐고, 현재 대기자는 120명이 넘는다. 서울시는 2030년까지 공공요양시설을 20곳 확충할 계획이지만, 시설을 새로 짓는 데 어려움이 많다. 시 소유 유휴부지 부족, 건립비 부담뿐 아니라 요양시설을 기피하는 주민들 반대도 큰 걸림돌이다.
강동센터는 지역 친화적 설계로 난관을 돌파했다. 건물 입구 정원과 내부 중앙정원, 뒤편 잔디광장과 산책로 등을 개방했다. 요양보호사 손을 잡고 걷기 운동을 하는 치매 어르신과 동네를 산책하는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센터 주변엔 명일초ㆍ중학교와 배재중ㆍ고등학교, 여러 아파트 단지가 있다. 주말이면 바로 옆 명일동성당을 찾은 신자들과 어린이들이 센터 정원으로 놀러와 북적북적해진다. 이곳에서 노인요양시설은 혐오 대상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 풍경일 뿐이다.
보호자들도 크게 만족스러워하고 있다. 강동구 주민 김경애(62)씨는 치매를 앓는 시어머니를 친정어머니 도움까지 받아가며 6년간 직접 돌보다가 최근 강동센터로 모셨다. 김씨는 “시간 맞춰서 인터넷으로 입소 신청을 하고 선착순 접수번호 20번을 받았을 때 너무나 기뻐서 온 가족이 부둥켜안고 펑펑 울었다”며 “처음엔 집에 가고 싶다고 조르던 어머니도 잘 지내셔서 마음이 놓인다”고 했다. 이어 “먼 외곽 지역이 아니라 도심이라서 언제든 찾아 뵐 수 있다는 게 가장 좋다”며 “뭐라도 보답하고 싶어서 남편과 함께 센터에서 봉사활동을 하려 한다”고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