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배심원으로 형사재판에 직접 참여하는 국민참여재판이 외면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재판부가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아 무산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법원행정처는 국민참여재판을 홍보하는 데 매년 2억 원에 가까운 예산을 사용하고 있었다. 판사들이 외면하는 제도를 국민에게 홍보하기 위해 돈을 퍼붓는 이상한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
법원행정처가 1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장동혁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접수된 국민참여재판 811건 중 실제 실시 건수는 92건(11.3%)에 불과했다. 실시율은 2019년 27.8%에서 코로나19가 발생한 2020년 11.3%로 급락했는데, 2021년(11.0%)과 거리두기가 전면 해제된 2022년(11.3%)에도 별반 다를 바 없었다. 특히 대전지법은 지난해 국민참여재판 신청을 53건 받고도 단 한 차례도 실시하지 않았다. 의정부지법·울산지법·제주지법에선 1회씩만 열렸다.
국민참여재판은 법원이 거부할 수도 있다. 지난해 국민참여재판 신청건수 가운데 29.7%를 재판부가 배제했다. 비율이 2021년 34.4%에 비해선 낮아졌지만, 국민참여재판 실시 초기인 2011년(12.8%)에 비하면 두 배 이상 높은 수치다.
이 같은 상황의 원인으로 '법관의 국민참여재판 기피'가 거론된다. 연세대 산학협력단이 2020년 법관들을 상대로 면접조사한 결과 "배심원을 비롯해 법관, 검사, 변호인, 참여관 및 실무관 등의 부담이 클 수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구체적으로 △압축적인 심리 △서류 사용 간소화 △짧은 판결문 작성 △이해하기 쉬운 설명자료 준비 △배심원 평결 직후 선고 등이 실무상 부담으로 지적됐다.
그런데도 법원은 피고인과 국민을 대상으로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국민참여재판 홍보 예산은 2021년 2억2,100만 원이었고, 2022년부터 내년까지 매년 1억8,600만 원이 책정됐다. '2023년 국민참여재판 통합홍보대행 제안 요청서'를 보면, 법원행정처는 홍보대행사에 △피고인에게 국민참여재판 신청을 독려하는 내용의 광고 △배심원 등을 위한 기념품 제작 등을 요청했다. 국민참여재판 신청 건수는 2018년 665건에서 지난해 811건으로 증가 추세다. 하지만 법원이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것이다.
장 의원은 "국민참여재판이 유명무실해진 이유를 엉뚱한 곳에서 찾고 있는 셈"이라며 "법관들이 기피하는 이유 등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해 실효성을 높일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