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상반기 섬유패션 상장기업 매출 총액은 12조1,347억 원이다. 당초 코로나19 종료에 따른 리오프닝 기저 효과를 기대했으나, 매출 효과가 발생하지 않았다. 다만 영업이익이 크게 개선된 몇몇 기업이 두드러지는데, 이는 급변하는 한국 리테일 산업의 흐름을 보여준 사례다. 코로나19는 패션 리테일 유통의 변화, 패션 브랜드의 성공 방식, 소비자 심리까지 송두리째 바꿨는데 그 흐름에 정확하게 편승한 업체와 그렇지 않은 곳의 명암이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흐름의 큰 변화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온라인-오프라인 유통의 중심 변화, 두 번째는 브랜드 성공방식의 변화와 루키 브랜드의 등장이다. 이 흐름을 정확히 읽고 성장 기회로 삼은 두 업체가 있으니,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1년 오픈한 '더현대 서울'과 무신사다. '더현대 서울'은 기존 백화점의 이름을 따르지 않았고 부지도 기존 업체가 기피했던 여의도를 선택하면서 새로운 성공 신화를 썼으며 무신사는 성숙 단계로 접어든 온라인 플랫폼의 새로운 개념을 제시했다.
더현대 서울은 최근 10여 년 동안 없었던 신규 백화점이다. 개장 이후 매출이 수직 상승하며 올해는 1조1,4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절대 강자(점포기준)였던 신세계백화점 강남점과 롯데백화점 본점(명동점)의 매출 규모와 큰 차이가 없다. 따라서 백화점 업계에서는 최근 10년 내 최대 사건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사실 더현대는 이름부터 다른 백화점과 다르다. 신세계백화점 ○○점, 롯데백화점 ○○점, 현대백화점 ○○점처럼 백화점 이름과 지점 명을 붙이지 않았다. 더현대는 그야말로 '현대'를 대명사로 지칭하면서 백화점이라는 개념보다 더 큰 의미를 담으려고 했다. 고객들에게 하나의 존재로 각인되기 위한 행동으로 판단된다.
더현대가 다른 백화점과 또 다른 건 내부 구조다. 기존 백화점이 모든 창문을 없애고 인숍(IN-Shop) 개념으로 인테리어를 했다면, 더현대는 가운데를 비워두고 둥근 곡선을 따라 매장을 입점시켰다. 비워둔 가운데는 폭포수가 흐르는 인공 자연물을 설치하고 위에는 창문을 통해 자연스럽게 자연광이 들어오는 구조다. 가장 위층은 뻥 뚫린 구조로 자연 구조물과 쾌적하게 오픈된 공간감으로 고객들을 백화점에서 편하게 체류할 수 있도록 했다. 편안한 체류 시간이 길어지면 자연스럽게 모든 브랜드와 푸드 숍이 고객들에게 오랫동안 노출됐다. 이전 구조가 접촉을 강요했다면, 더현대는 자연스레 접근 기회를 늘리는 방식이다.
더현대는 매출 증대보다는 고객들이 오래 머무를 수 있는 곳, 밝고 환하고 편안한 곳, 고객들이 기억하고 늘 편하게 있을 수 있는 곳을 의도했다. 고객의 좋은 기억은 언제든 재방문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브랜드에 의존하는 대신 백화점 스스로 고객들을 끌어들이는 전략은 향후 백화점 유통이 지향할 주요한 성공 요인일 것이다.
더현대는 그런 점에서 인테리어와 입점 브랜드의 차별화로 확실히 고객들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고객들에게 다양한 체험공간을 제공했다. 팝업 스토어를 2주일 단위로 진행하는데, 기존 백화점은 생각하지 못했을 브랜드를 과감하게 내세웠다. 가수 박재범의 '원소주' 팝업, 유튜브 채널 '빵빵이의 일상' 팝업 등은 그동안 보기 어려운 독특하고 재미있는 경험을 전달한다. 길어진 체류만큼 고객들은 더 많은 관심과 비용을 지불하고, 재방문으로 호응했다.
더현대를 벤치마킹하는 신세계
기존 백화점이 40대 이상 고객을 타깃으로 삼는다면 더현대의 타깃은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다. 더현대 이전까지 MZ세대는 백화점에서는 상품만 확인하고, 구매는 온라인에서 하는 '쇼루밍' 족에 머물렀다. 매출이 따르지 않는 세대이기에 기존 백화점은 MZ세대를 등한시했으나, 더현대는 달랐다. MZ세대의 숨겨진 힘, 즉 매출이 아닌 트렌드 생성에 주목했다. 인스타그램 같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자신의 경험을 업로드하고 공유하는 특성을 이용해 이들이 일단 더현대로 모여들도록 했다.
또 입점 브랜드 및 편집숍을 기성세대는 익숙하지 않지만, MZ세대는 열광하는 분야로만 채웠다. 지하 2층에 쿠어, 인사일런스, 디스이즈네버댓 등 온라인 플랫폼에서 MZ세대에게 각광받는 브랜드를 입점시켰고 지상 3층에도 아이엠샵, 스컬프터, PEER 등 MZ세대들이 가장 많은 방문을 하는 편집숍을 배치했다.
개장 후 1년간 더현대 서울의 연령대별 매출 비중을 분석한 결과는 이 전략이 성공했음을 보여준다. 20~30대 비중이 50%로 나타났으며 이는 더현대를 제외한 현대백화점 평균 20~30대 비중(25%)의 두 배에 해당한다. 게다가 전체 매출의 54%가 더 현대에서 10㎞ 이상 떨어진 광역 상권의 고객이다. 즉 먼 거리에서 더현대를 찾아 구매하는 MZ세대가 많다는 얘기다.
더현대의 성공은 결국 신세계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부산 해운대의 신세계 센텀시티점은 최근 4층 여성층을 모두 MZ세대가 좋아할 만한 여성복 브랜드로 교체했다. W컨셉의 온라인 브랜드, 이미스, 렉토 같은 현재 20~30대 여성들에게 인기가 높은 브랜드를 중심으로 교체했다. 신세계 센텀시티의 변화는 온라인 브랜드를 만나기 어려운 지역이라는 점을 파악해 전개한 것으로, 더현대의 성공법을 달리 해석한 전략이다.
무신사도 코로나19를 지렛대로 삼고, MZ세대의 호응으로 성공했다. 고객의 구매행위가 온라인 플랫폼으로 이동하는 흐름에 MZ세대의 특성을 결합시켰다. 온라인 플랫폼의 장점을 단순 활용하는 대신, 신규 브랜드를 발굴하고 성장시키는 이른바 '인큐베이션'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좋게 말하면 입점 업체와의 새로운 상생전략을 모색한 셈이다. 이에 따라 코로나 이전인 2018년 3,500개인 입점 브랜드가 올해 10월에는 7,559개로 늘어났다. 고객들은 오프라인보다 다양한 브랜드들에 접촉하게 됐고, 개별 브랜드는 자신의 컬렉션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공간에서 구매자를 만날 수 있게 된 셈이다.
요컨대 무신사는 디자이너 혹은 온라인 브랜드가 커 나가는 인큐베이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데, 이런 역할은 궁극적으로 한국 패션 브랜드의 위치와 방향을 바꾸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무신사의 양적, 질적 팽창은 한국 패션 브랜드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디자이너 온라인 브랜드의 성장은 기존의 내셔널 브랜드(중견 이상의 기업이 오프라인을 중심으로 전개하는 브랜드를 칭함)들의 입지를 흔들 것으로 보인다. 트렌디한 패션을 빠르게 적용하거나 자신만의 독특한 색깔을 보여주는 온라인 브랜드와는 다르게, 수많은 보고 체계와 긴 생산 일수 때문에 변화가 어려운 오프라인 중심의 내셔널 브랜드는 MZ세대를 만족시키기 어렵다. 게다가 SNS의 확장은 온라인 브랜드가 다양한 고객들에게 홍보를 하는 데 큰 역할을 했고, 이는 반대로 내셔널 브랜드에는 위협으로 작용할 것이다.
무신사의 등장으로 패션 대기업의 행보도 바빠졌다. 곳곳에서 특별팀을 만들어 온라인 브랜드를 키우기 시작했다. LF의 일꼬르소, 코오롱의 247이 대표적이다. 기존의 내셔널 브랜드도 온라인 전용 상품, 트렌디 전용 상품 등을 개별 기획하거나 브랜드의 세컨 라인을 구성하면서 올드함 혹은 지루함을 탈피하려고 시도 중이다. 그러나 빠르게 변하는 패션 리테일 산업에서 성공하려면 빠른 업무 처리와 결정, 그리고 트렌디한 기획에 대한 경영진의 믿음이 필요하다.
앞으로 한국 패션 리테일 산업은 더욱 속도가 빠르게 변화할 것이다. 온라인에서 어느 정도 매출이 성장한 브랜드가 오프라인으로 유통을 확장하는 경향이 뚜렷해질 것이다. 백화점에서 브랜드를 오픈해 성장하는 과거 방식이 이미 폐기됐다.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진출하는 것이 새로운 성공 공식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오프라인은 명품 브랜드의 직(直) 진출과 온라인 브랜드의 흥행으로 양극화될 것으로 보인다. MZ세대가 흥미를 느낄 만한 자극적이고 새로운 아이템이 가득한 브랜드만이, 그리고 이런 콘텐츠가 가득한 오프라인과 온라인 플랫폼만이 한국 패션 리테일 변화에 선두주자로 살아남을 것이다. 더현대와 무신사가 지금까지 성공한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