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집회·시위를 금지하거나 제한할 수 있는 도로의 범위가 확대되는 내용의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시행령 개정안이 17일부터 시행됐다. 경찰은 원활한 교통 소통을 위해서라는 이유를 들고 있지만, 금지·제한 가능 도로에 '대통령실 인근 도로'가 포함된 것으로 나타나 집회·시위의 자유 위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경찰청은 이날 집시법 개정 시행령이 공포·시행됐다고 밝혔다. 이번 시행령 개정은 지난달 경찰이 국민의 평온한 일상을 지키기 위해 준법 집회·시위 문화를 정착시키겠다며 내놓은 개선 방안에 따른 조치다.
집시법은 관할 경찰서장이 교통 소통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대통령령으로 정한 '주요도로'의 집회·시위를 금지하거나 조건을 붙여 제한할 수 있다. 이번 개정 시행령은 이 주요도로에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과 관저 인근의 이태원로와 서빙고로 등 11개 도로를 추가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이외에도 집회시위가 자주 열리는 서초구 서초동 법원·검찰청 사거리, 강남대로 등도 주요도로에 새롭게 포함됐다. 최근 5년 동안 집회·시위가 개최되지 않았거나 교통이 과거에 비해 원활해진 기존 도로 12개는 제외되면서 전국 주요도로는 88곳에서 87곳으로 줄었다.
하지만 서울만 보면 집회·시위를 금지·제한할 수 있는 도로가 기존 16곳에서 20곳으로 오히려 늘었다. 야권과 일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집회·시위의 자유 위축이 우려된다"는 반발이 나오는 이유다. 12일 열린 경찰청 국정감사에서도 개정령을 둘러싼 의원들의 질타가 이어졌다. 문진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그동안 경찰이 대통령 집무실 집회를 수차례 금지했다가 법원에서 기각당한 적이 있었다"며 "법으로 안되니 시행령으로 제한하려는 것이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같은 당 권인숙 의원도 "지난해 12월 헌법재판소에서 대통령 관저 100m 내 모든 집회 금지가 과도하다 판단했는데, 이제는 시행령을 근거로 금지할 수 있게 돼 헌재 결정을 뛰어넘는 시행령 개악"이라고 지적했다.
시민단체들은 "대통령실 앞 집회·시위를 원천 봉쇄하기 위한 목적"이라며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등은 "우회적 방법을 통해 주요 관공서에 대한 국민들의 항의에 재갈을 물리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비판에 대해 경찰은 △통행량 △유동인구 △도로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했다는 입장이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국감에서 "헌법상 집회·시위의 자유는 보장돼야 하지만 집회 참가자의 자유를 위해 일반 국민들이 평온권이 침해될 이유는 없다"며 "집회·시위 문화 개선을 위한 방안을 마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