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자식이 죽었다. 식량은커녕 마실 물마저 떨어졌다. “세상은 왜 우릴 버렸느냐”는 생존자들의 절규는 지금도 끊이지 않는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 전쟁 발발 이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민간인들의 생지옥 같은 삶이 9일째 계속되고 있다. 이를 타개할 만한 희소식도 전혀 들리지 않는다. 유일하게 숨통을 틔워줄 수 있는 가자지구 남부 라파 통로 개방 여부도 안갯속이다.
15일(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보건 당국은 이날까지 팔레스타인인 2,670명이 숨지고 9,600명이 부상했다고 밝혔다. AP는 “2014년 6주 이상 지속된 ‘50일 가자전쟁’ 당시 팔레스타인 측 사망자(약 2,200명)보다도 많아졌다”고 전했다. 이스라엘인 희생자도 현재까지 최소 1,500명이다.
가자지구 병원은 중태에 빠졌거나 사망한 아이를 붙들고 통곡하는 민간인들로 가득 찼다. 남부 도시 칸유니스의 나세르 병원 중환자실 의사 모하메드 칸델은 “수백 명의 중환자로 병원이 포화 상태이고, 대부분이 3세 미만 영아”라고 AP에 말했다. 국제 아동구호기관 유니세프는 지난 13일 성명에서 “공습으로 아이들이 끔찍한 화상을 입거나 팔다리를 잃었다”며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보복 공격을 규탄했다.
병원은 ‘무덤’으로 변해가고 있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은 이날 “병원 예비 발전기 연료가 24시간 내에 고갈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기가 끊기면 중환자 수천 명의 목숨이 위험해지기 때문이다. 가자 북부 카말 아드완 병원의 후삼 아부 사피야 소아과장은 “중환자실에 인공호흡기를 단 신생아가 7명 있다”며 위태로운 상황을 AP에 전했다
이스라엘군 지상군 투입 경고에 북부 주민들이 이동하면서 남부 도시 인구 밀도는 극도로 높아졌다. 영국 BBC방송은 “40만 명이었던 칸유니스 인구가 하루아침에 100만 명이 됐다”고 보도했다. 갈 곳 없는 북부 난민을 남부 주민들이 자택으로 들인 탓에 집 한 채에서 50~60명이 한꺼번에 지내는 사례도 생겼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대피 지역’으로 지목한 가자지구 남부의 거주지 곳곳엔 여전히 이스라엘군 로켓이 퍼붓고 있다.
가자 남부 도시 라파의 주민 메스바 발라와이(45)는 “이틀간 가스통을 사지 못했고, 빵과 치즈도 없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호소했다. 필립 라자리니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 대표는 “가자지구는 목이 졸려 죽고 있다. 세계가 인간성을 잃었다”고 한탄했다.
완전 고립 상태인 가자지구에 그나마 한줄기 빛이 될 수 있는 건 현재로선 이집트 국경 라파 통로의 개방뿐이다. 그러나 혼선만 빚고 있는 상태다. 이날 로이터통신은 이집트 당국자 2명을 인용해 “미국·이스라엘·이집트가 16일 오전 9시(한국시간 오후 3시)부터 일시 휴전과 함께 라파 통로를 재개방하기로 합의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스라엘 총리실은 보도 30여 분 만에 “합의 사실이 없다”고 반박했고, 하마스도 “그런 통보를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후 로이터는 “라파 통로 인근 이집트 알아리시 지역에서 구호물자 트럭이 계속 대기 중”이라고 보도했다.
인도주의적 조치는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칸유니스 외곽 지점에 물 공급을 복구했다고 발표했으나, 지역 수자원 당국은 “물 공급을 확인할 수 없으며, 펌프를 돌릴 전기도 없다”고 밝혔다. 가자 전체가 절체절명 위기 상황이라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