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의 ‘큰 꿈’…몸집 키웠지만 속은 '빚더미 영양실조' [일대일로 10년]

입력
2023.10.17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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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일대일로 10년의 성과와 과제]
중-유럽, 중-라오스 철도 순항…물류 시간·비용 감축
국가 디폴트 14건 중 9건이 일대일로 참여국
시진핑, 3차 정상포럼서 '지속가능성' 강조할 듯


일대일로의 출발
2013년 9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카자흐스탄 나자르바예프대학에서 '21세기 실크로드 경제벨트 공동 건설' 구상을 제안했다. 중국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이어지는 거대 육로 경제권을 건설하자는 것이었다. 한 달 뒤 인도네시아를 방문한 시 주석은 중국을 출발해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으로 이어지는 해상 실크로드 구상을 제시했다. 고대 중국과 서역을 잇는 교역로였던 실크로드를 내륙(일대)과 해상(일로)에 각각 복원해 중국 중심의 초대형 경제벨트를 구축하겠다는 '일대일로(一帶一路)' 프로젝트의 막이 오른 순간이었다.

이달 17, 18일 중국 베이징에서 제3회 일대일로 정상포럼이 열린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비롯해 프로젝트에 참여한 140개국 대표가 참석해 10년간의 성과를 평가하는 자리다. 일대일로를 앞세워 세계 구석구석까지 뻗어나간 중국의 외교·경제적 영향력을 과시하는 무대이기도 하다.

그러나 중국이 자찬만 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프로젝트 완성 목표 시점(2049년)이 한참 남았지만 벌써 위기를 맞고 있다. 인프라 건설을 대가로 중국이 참여국들 손에 쥐어준 차관이 참여국은 물론 중국까지 위협하는 탓이다

유엔 회원국의 80%가 참여..."물류 비용 2% 절감할 것"

외관상 일대일로의 위상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지난달 기준으로 참여국은 154개국에 달하며 국제기구 30여 곳도 동참했다. 이는 유엔 회원국(193개국) 80%에 달하는 규모다. 2017년 제1회 일대일로 정상포럼과 2019년 제2회 포럼에는 28개국과 37개국의 대표가 참석한 데 반해 올해 포럼에는 140개국과 국제기구 30곳에서 4,000여 명이 참석한다고 중국 정부는 밝혔다. 특정 국가가 주도하는 정상급 국제회의로는 최대 규모인 셈이다.

일대일로의 근간인 철도·항만·공항 등 운송 인프라 구축도 대체로 순항 중이다. ‘중국-유럽 화물열차’와 ‘중국-라오스 철도’가 완공돼 운행 중이다. 중국-유럽 화물열차의 운행 노선 84개는 유럽 25개국의 도시 211곳과 연결된다. 중국 신화통신에 따르면, 올해 7월 기준으로 열차 7만5,000대가 이 철도를 타고 중국과 유럽 대륙을 오갔다. 2021년 말 개통된 중국-라오스 철도의 올해 8월 기준 누적 이용객은 1,900만 명(연인원 기준)이고, 화물 운송량은 2,300만 톤에 이른다. 중국 관영 차이나데일리는 "일대일로 운송 인프라 건설에 참여한 국가들의 물류 시간을 평균 1.2~2.5% 단축하고, 운송 비용은 1.1~2.2% 낮출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은 일대일로로 개발도상국과 저개발국이 수혜를 누린다고 강조한다. 중국 외교부는 "지난 10년간 참여국들의 빈곤 감소와 일자리 확대가 꾸준히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참여국들과 추진한 사업은 3,000여 건, 투자액은 1조 달러, 창출된 일자리는 42만 개라는 설명도 이어졌다. 2030년까지 참여국의 760만 명이 극단적 빈곤에서 탈피하고 3,200만 명이 차상위 빈곤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중국은 선전한다. 운송 분야의 모든 프로젝트가 가동될 경우 전 세계 소득이 0.7~2.9% 상승할 것이란 장밋빛 전망도 내놨다.

"돈 빌린 개도국도, 빌려준 중국도 재정 부담"...부채의 함정

내막을 들여다보면 부채의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중국은 참여국에 인프라 건설을 위한 차관을 제공했다. 중국 기업이 현지에 진출해 건설 사업을 사실상 독점하는 동안 개도국이 빌린 돈에는 이자가 붙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부채 상환을 연기해주는 대신 중국은 해당 인프라 운영권을 차지했다. 사업이 진행될수록 개도국 경제가 중국에 종속되는 구조다.

AP통신에 따르면 잠비아, 스리랑카, 우간다, 몽골, 라오스 등 채무불이행(디폴트) 상태에 빠졌거나 경제 위기에 처한 개도국 12개 나라를 분석한 결과, 이들이 진 외채의 50% 이상이 중국 채무였다. 또한 정부 세수의 약 3분의 1이 중국 채무 상환에 쓰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글로벌개발센터(CGD)에 따르면 일대일로 참여국 중 23개국이 파산 위기에 처해 있다. 2020년 기준 참여국들의 부채 규모는 3,800억 달러(약 500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신용평가사 피치는 올해 4월 기준으로 국가적 차원의 디폴트 14건 중 9건이 스리랑카, 레바논, 아르헨티나 등 일대일로 참여국들에서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일대일로 참여가 파산을 초래했다고 단정할 순 없지만, 중국에서 빌린 돈이 국가 재정 위기와 완전히 무관하다고 보기도 어렵다.

채권자 중국도 괴롭긴 마찬가지다. 미국 컨설팅회사 로디움그룹에 따르면, 2020년부터 올해 3월까지 중국이 제공한 차관 785만 달러(약 106억 원)가 부채 조정 협상을 통해 탕감되거나 상환 기간이 연장됐다. 중국도 재정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형국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악성 대출의 급증이 중국 은행에 부담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AP는 "일대일로는 중국이 개도국과 저개발국 자원을 독식하고 외교적 외연을 확대하려는 사업"이라며 "합리적 수익 창출이 어려운 구조"라고 꼬집었다.

"일대일로 인프라 바탕으로 마이너스 메워질 것"

이 같은 부채 문제는 일시적이라는 반론도 있다. 미국 윌리엄앤메리대 산하 연구기관 이에드데이터의 아마르 멜릭 수석연구원은 미국의소리(VOA)방송에서 "일대일로는 인프라 구축 시기에는 채무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완성되는 인프라를 바탕으로 한 경제 활동이 증가하면 채무도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채무가 커진 만큼 경제 회복기에 들어서면 상환 여력이 생길 것”이라고 했다.

시 주석은 3차 정상포럼에서 이 같은 비판론을 상쇄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부채 해소를 위해 세부 전략을 수정하거나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지속가능성에 방점을 찍은 친환경·첨단기술 분야에서의 새로운 협력 사업을 내놓을 전망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일대일로는 점차 수혜국이 관심 있는 전략적 프로젝트가 우선되는 방향으로 개편될 것"이라고 짚었다.

베이징= 조영빈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