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 유치와 원교근공 전략

입력
2023.10.15 16: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대한민국의 첫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은 남미 칠레였다(2004년). 경제구조가 우리와 정반대였기 때문이다. 광물 위주의 수출구조였으며, 농산물 수확 철도 겹치지 않고 주력품목도 과일류에 집중됐다. 한ㆍ칠레 FTA는 경제전쟁에서 원교근공(遠交近攻) 전략의 표본이다. 국익추구 과정에서 경쟁국가에 우위를 차지하려면, 경쟁상대 배후국가와 유대를 맺어야 한다는 얘기다.

□국제행사 유치도 그렇다. ‘1988 올림픽 유치전’에서 서울이 나고야를 52대 27로 물리친 것도 일본 국력에 대한 국제사회 경계감을 이용한 덕분이다. 일본 스포츠용품 업체의 시장 장악력이 커질 것을 우려한 독일계 A 스포츠 업체의 지원이 있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나고야 올림픽은 일본 경제발전을 더 가속화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라는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발언에 주목한 서방 국가들이 한국을 도왔다는 말도 있다.

□2010년 월드컵 유치전(2022년 개최)에서 한국과 일본이 카타르에 밀린 것도 한국ㆍ일본에 대한 견제심리가 꼽힌다. 당시 유럽 국가들은 대부분 카타르를 지지했다. 한국이나 일본이 월드컵을 개최하면 유럽 업체가 챙길 몫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반면 대형 이벤트 개최 경험도 적고, 관련 자국기업도 많지 않은 카타르를 돕는다면 경기장, 교통ㆍ통신 인프라, 방송 중계 및 IT 관련 사업, 스포츠용품 사업 등에서 막대한 수익이 예상됐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

□발생해선 안 될 비극이지만,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이 한국과 사우디가 경쟁 중인 ‘2030년 부산 엑스포’ 유치 구도를 흔들고 있다. 사우디가 팔레스타인 지지를 선언한 뒤에는 그 변동성이 더 커졌다. 인간존엄, 생명존중 등 보편윤리에서 아랍 국가들이 낮은 인식을 보인다는 우려가 국제사회에서 제기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한국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구도가 조성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우리 유치 노력은 더 치열해져야 한다. 야당도 엑스포 유치는 '대통령과 여당이 아닌, 대한민국 전체에 호재'라는 대승적 인식을 가져야 한다. 서울 올림픽 유치에 대해 정주영 회장은 “국가를 위해 한 덩어리가 되어서 일해 본, 내 생애 가장 기쁜 일”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조철환 오피니언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