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북부 도시 가자시티에서 구호 활동을 벌여 온 이슬람 구호단체 팔레스타인 적신월사(PRCS)가 13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 지상군 투입 위협에도 끝까지 남아 부상자들을 돌보겠다고 발표했다. 국제 구호 단체와 외신 기자들이 잇따라 대피하는 상황에도 환자들과 함께하겠다는 결의다.
13일(현지시간) 아랍권 매체 알자지라에 따르면, PRCS는 이 같은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아랍권 구호단체인 PRCS는 가자지구 내에서 구호 활동을 벌여 왔으며, 이날까지 이스라엘군 공습으로 구호대원 최소 6명이 사망했다.
단체는 성명에서 “가자지구에 대한 점령 위협에도 불구하고 결정은 내려졌다. 우리는 떠나지 않았고, 떠나지 않을 것이다. 의료진은 각자의 인도주의적 의무를 계속할 것이다. 사람들이 혼자서 죽음을 대면하도록 내버려두지 않겠다”고 적었다.
유엔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이날 가자시티 등 가자지구 북부 주민 110만 명에게 24시간 내 남부로 이동하라고 통보했다. 사실상 지상군 개입 신호다. 그러나 가자지구 전체 주민 230만 명의 절반에 해당하는 인원이 24시간 만에 이동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비판이 거셌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북부 병원에 있는 환자들을 옮기는 것은 사형 선고나 다름없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IDF가 진격 의지를 꺾지 않으며 가자시티는 혼란과 공포에 사로잡혔다. 지상군 개입이 현실화하면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와 민간인 구분 없이 대규모 살상으로 이어질 게 뻔하기 때문이다. 국제 구호단체와 현장 외신 기자들은 서둘러 가자시티를 빠져 나왔다.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의 이나스 함단은 물건을 손에 잡히는 대로 피난 가방에 쑤셔 넣으며 “이것은 혼란이다. 아무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고 AP통신에 말했다. UNRWA 외국인 직원들은 이날 남부 기지로 전원 이동했다.
다만 남부로 이동할 자원이 없는 팔레스타인인들은 여전히 북부 도시에 고립된 채 다가올 재앙에 떨고 있다. 알자지라는 "현재까지 피난에 오른 건 수천 명뿐이고 대규모 탈출 징후는 보이지 않는다"고 전했다. 줄리엣 투마 UNRWA 대변인은 “단체에 소속된 수천 명의 팔레스타인 스태프들이 어떻게 대피할지는 모른다”며 “그들 스스로 행방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자지구 북부 팔레스타인인들은 “세상이 우릴 버린 것 같다”며 극도의 고립감을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UNRWA의 북부 보호소를 담당하던 이마드 아부 알라는 보호소에 있던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그대로 둔 채 남부로 대피한 상황에 대해 AP에 “우리는 민간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게 중요하지 않게 된 것이냐”고 반문했다.
PRCS는 잔류를 결정했다. 결정이 나기 전 네발 파르사크 PRCS 대변인은 AP 인터뷰에서 "이제 유일한 관심사는 살아남는 것 뿐"이라면서도 "110만 명의 사람들이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며 흐느껴 울었다. 이어 “많은 의료진이 환자를 떠나 남부로 대피하기를 거부하고 있다”며 “대신 가족과 동료에게 전화를 걸어 작별 인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알자지라는 피난 행렬에 오른 주민들이 차량, 당나귀, 맨발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이동하고 있다고 전했다. 주유소에는 차량 연료를 주입하려는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섰고, 팔레스타인인들은 갈 곳 없이 거리에서 밤을 지새울 예정이다.
서로 정보를 교환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알자지라는 시민들이 “가야 할 방향을 모른 채 서로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 어느 길이 공습을 당했는지 정보를 교환했다”고 전했다.
피난 행렬에 오른 가자지구 팔레스타인 여성 에만 샨티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피난 준비물을 소개하는 영상을 올렸다. 그는 노트북, 물티슈, 신분증을 보관할 노란색 폴더, 종교 장신구와 비상약을 챙겼다고 말했다. “긴급 상황시 우리의 공식 유니폼인 기도복”을 입으라고도 권했다. 알자지라는 헐렁하고 가벼운 이 옷은 사망하더라도 맨 몸이 노출돼 보이지 않아 공습을 당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이 많이 입는다고 설명했다.
“신이 당신들과 우리를 축복하길. 우리에게 평화가 주어지길.” 그는 이렇게 말하며 영상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