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전면에 나선 정부의 '마약과의 전쟁' 정책 기조가 무색하게, 내년도 마약 중독자 치료 지원 예산이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가 요청한 액수에서 85% 삭감된 채 책정된 것으로 확인됐다. 중독환자 재활 예산 증액분은 전부 깎였고, "환자를 받을수록 손해"라며 다수가 '개점휴업' 중인 지정 치료병원을 지원하기 위한 신규 예산 요청도 기각됐다. 마약 투약은 재범률이 높아 중독자 관리가 중요한 점을 감안할 때 정부의 정책 의지가 약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인 전혜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내년도 '마약 중독자 치료 관련 사업 예산'의 복지부 요구안과 책정안을 비교 분석한 결과, 내년 정부 예산안에 편성된 해당 예산은 올해와 같은 4억1,600만 원으로 당초 복지부가 요청한 28억600만 원보다 85%가 적었다.
세부 내역을 보면 복지부는 올해 4억1,000만 원인 '중독자 치료비 지원 사업' 예산을 내년에 12억 원으로 늘려달라고 요청했다. 치료 대상 환자를 현행 350명에서 500명으로 늘리고 치료비 지원 단가도 234만 원에서 300만 원으로 인상, 마약 중독자에 대한 국가 관리를 강화하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증액 요구는 전혀 관철되지 않았고, 올해 예산도 이미 소진돼 다른 사업 예산에서 2억 원가량을 끌어다가 쓰고 있는 상황이다.
환자 재활을 담당하는 마약 치료 지정병원 지원 요청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병원 운영 지원 11억 원 △전문인력 양성 개발 2억 원 △치료보호·재활 연계 3억 원 등 총 16억 원이다.
지난 6월 기준으로 전국 마약 치료 지정병원 24곳 중 16곳은 환자를 받지 않고 있다. 최근 3년간 치료 실적이 없는 병원도 12곳에 달한다. 투약자가 당국 심의를 거쳐 치료자로 지정되면 병원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받아 1년간 무상치료를 하게 된다. 하지만 지정 환자보다 더 많은 환자가 몰리는 데다가, 마약 중독환자는 치료·관리 비용이 많이 드는 데 비해 수가는 적어 환자를 볼수록 손해를 본다는 게 병원들의 호소다. 수도권에서 가장 많은 환자를 보는 인천참사랑병원도 "폐업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로 재정난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국가 지원 부족은 병원뿐 아니라 환자들도 체감할 정도다. 필로폰 투약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아이돌 그룹 '위너' 출신 가수 남태현(29)씨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 참고인으로 출석해 "마약 중독자 재활 치료에 대한 국가적 지원이 솔직히 많이 부족한 상태"라며 지원 확대를 호소했다.
현재 민간 마약중독 재활시설 '인천 다르크(DARC)'에 입소해 지내고 있는 남씨는 "다르크 센터장이 매일 '살려달라'는 중독자들의 전화를 받고 있지만 수용 공간이 없어 너무 힘들어한다"라며 "중독자들은 재활시설의 24시간 관리와 통제가 필요한 만큼 정부에 지원을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마약 중독자 재활 예산 삭감은 마약 투약의 심각성을 강조해온 정부 기조와도 배치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마약이 관리 가능한 임계치를 넘었다"고 경고했고, 내년 예산안 논의를 앞둔 올해 4월에도 "미래 세대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마약과의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혜숙 의원은 "마약 단속과 검거에만 치중하지 말고 중독자의 사회 복귀를 위한 지원 확대를 모색해야 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