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후기 100년 안팎 나온 백자대호(달 항아리) 말고도 그 시대를 드러낼 도예 작품은 많습니다. 달 항아리 붐은 다양한 우리 도예를 널리 알리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한국미술사학회장을 지낸 도자사 전문가인 방병선(63) 고려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의 다소 냉정한 평가다. 아무런 무늬 없이 만들어진 백자대호를 수준 높았던 문화유산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임금이나 사대부가 백자대호와 관련한 시 한 수라도 지은 게 있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다"며 "왕실이나 사대부의 미감이나 예술적 안목이 상당했는데도, 별 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방 교수에 따르면 백자대호는 추위에 약해 야외에 놓으면 음식 등 저장물이 얼어 버린다. 그렇다고 왕실이나 사대부의 사랑방에 인테리어 용도로 놓기에는 너무 크다. 간장이나 참기름 등의 저장용도로 쓰였을 것이란 추측이 나오는 이유다.
그럼에도 미술시장에서 달 항아리의 인기가 치솟은 데에 방 교수는 “한민족은 한(恨)의 비애미가 있다”고 한 야나기 무네요시(1889~1961) 등의 ‘일본 민예운동’의 영향으로 꼽는다. 백자대호를 ‘달 항아리’로 명명한 화가 김환기(1913~1974)의 시대에도 이들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았다는 것이다. 방 교수는 “비정형의 달 항아리를 보며 한국의 처지를 생각했다는 것은 (무네요시의) 개인 감상일 뿐"이라며 "미술사가가 아닌 화가 김환기는 작품 소재로 달 항아리를 취사선택한 것이고, 그의 달 항아리 평가는 미감·철학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원래 영국 도예가 버나드 리치(1887~1979)가 시작한 민예운동은 대가의 예술품뿐 아니라 민초의 작품 중에도 예술성이 높은 것을 우선시한다고 그는 설명했다. 무네요시 등은 이미 널리 알려진 고려청자 등을 배제하고 이에 걸맞은 조선 미술품을 찾은 끝에 백자대호에 의미를 부여했다는 것. 최근 일부 연예인과 부호 등 달 항아리 소장가의 수집도 직 ·간접적으로 달 항아리 열풍에 영향을 줬다고 본다.
달 항아리는 현대미술의 미니멀리즘과 상통하는 미감의 고미술품으로 재평가·재해석되면서 인기가 치솟고 있지만 여기에 안주할 일이 아니라고 방 교수는 목소리를 높였다. 예술 가치의 한계가 뚜렷한 달 항아리 말고도 예술성이 뛰어난 우리 문화유산을 재조명해 널리 알리는 계기로 삼아야 할 때란 것이다. “고려청자 외에도 중국, 일본과 전혀 다른 미감의 용, 호랑이 등 무늬가 들어간 청화백자, 철화백자를 비롯해 연적, 필통, 항아리 소품, 반상기, 그릇, 병풍 등 제 2·3의 달 항아리가 될 수 있는 것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미술시장에서 초고가에 거래되는 높이 40㎝ 이상의 조선후기 달 항아리 다수는 일본인이 보유하고 있다. 때문에 국외 경매에서 초고가에 판매되는 달 항아리 수익금의 대부분이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는 것도 현실이다. 그는 “일본처럼 국가정책으로 자국 문화유산 관련 영문 연구자료·참고문헌을 다양하게 출판해 세계에 전파할 필요가 있다"며 "달 항아리 현대작가들도 조선후기작을 재현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확대 재생산하고 동시대 미술품과 연계해 재해석하고 재창작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