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를 바라보는 서방 일각의 긍정적 시각이 완전히 바뀌었다며 이같이 진단했다. 지난 7일 기습 공격을 통해 군인뿐 아니라 여성과 어린이 등 최소 900명의 이스라엘인을 숨지게 했다는 점에서, 그동안 암암리에 하마스를 ‘정치세력’으로 인정해 줬던 견해도 설 자리를 잃게 됐다는 것이다. 민간인 무차별 살해는 최소한의 ‘선’을 넘은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다만 한편에서는 ‘자성론’도 나오고 있다. 하마스의 이번 테러에 분노하는 세계가 그간 이스라엘에 의한 팔레스타인 민간인의 죽음에는 상대적으로 무관심했다는 이유다. 하마스 편을 들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이스라엘을 지지할 수도 없다는 얘기다.
NYT는 이날 “(이번 전쟁 전까지) 이스라엘은 하마스를 테러 조직이지만, 가자지구에서 유용한 역할을 한다고 여겼다”면서 역대 이스라엘 정부가 하마스와 ‘조용한 거래’를 해 왔다고 보도했다. 특히 이스라엘의 2005년 가자지구 철수 이후로는 하마스가 이 지역의 안정 상태 유지를 위해 노력해 온 것으로 분석됐다. AP통신도 최근 수년간 하마스가 이스라엘 공격보다 가자지구 통치에 집중하는 것으로 보였다고 전했다.
실제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에선 젊은 세대와 진보 진영을 중심으로 하마스를 ‘자유의 투사(Freedom Fighters)’로 보는 시선이 적지 않았다.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해 ‘이스라엘의 탄압’에 맞서는 역할을 했다고 본 것이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중동정책센터 책임자 나탄 삭스는 “가자지구를 이스라엘의 잔혹성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여기던 이들에게 하마스는 민족주의적 저항운동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민간인을 향한 테러와 살인, 납치 행위를 한 하마스에 이제는 많은 이들이 등을 돌리게 됐다고 NYT는 짚었다. 이스라엘 고위 관계자들은 가자지구 안정이 하마스의 분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본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날 연설에서 “우리는 항상 하마스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이제 전 세계가 안다”며 하마스를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까지 비유했다. 미국과 영국, 유럽연합(EU) 등 서방 지도자들도 잇따라 하마스를 비판하며 이스라엘 편에 서고 있다.
하지만 이는 결국 ‘위선’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아랍권 매체 알자지라는 올해 9월까지 이스라엘에 의해 살해된 팔레스타인인이 최소 227명에 달하는 동안, 서방이 침묵을 지켰다고 꼬집었다. 같은 시기 사망한 이스라엘인은 29명이었다.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를 도우면서 팔레스타인의 자결권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영국의 진보 평론가 에런 바스타니는 엑스(X·옛 트위터)에서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민간인 대상 공격은 (사실상) 지지하고, 팔레스타인을 비난하는 건 분명한 이중 잣대”라고 밝혔다.
이스라엘에 근본적 책임을 묻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 내 35개 단체로 구성된 ‘하버드 팔레스타인 연대 그룹’은 “지난 20년간 가자지구 팔레스타인인들은 ‘야외 감옥’을 강요당했다. 이번 사태의 모든 책임은 전적으로 이스라엘에 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뉴욕에 사는 대학원생 마리암 알라니즈는 AFP통신에 “하마스는 비판받아야 마땅하지만, 팔레스타인의 투쟁은 (하마스가 아니라) 팔레스타인인의 것”이라며 하마스와 팔레스타인의 동일시를 경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