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사우디 동시 뺨 때린 하마스...전 세계가 '중동 수렁'으로

입력
2023.10.10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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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속 군사 지원 나선 미국
이란·사우디 등 중동 넘어
우크라, 중국 셈법 ‘복잡’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기습으로 50년 만에 다시 터진 ‘중동의 화약고’로 전 세계가 수렁에 빠지듯 휘말려 들고 있다. 미국은 즉각 최첨단 항모전단 전진 배치 등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군사 지원에 나섰지만, 속내는 당혹스럽기 그지없다. 미국이 공들여온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 간 수교 협상에 먹구름이 드리웠을 뿐만 아니라 이란의 배후 개입설이 확인될 경우 전운이 중동 전체로 번질 수 있어서다. 미국의 지원을 받아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나 중동에서 영향력을 넓혀가는 중국 등 각국의 외교 스텝도 꼬일 가능성이 커졌다.

미국, 확전 차단에 ‘총력’

8일(현지시간) AFP통신 등에 따르면 미국 국방부는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하루 만에 신속한 ‘실력 행사’에 나섰다. 세계 최대 핵 추진 항공모함 제럴드 포드함을 주축으로 한 항모전단의 동지중해 전진 배치 및 전투기 증강, 탄약을 비롯한 군 장비 제공에 착수한 것이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이스라엘이 미국에 아이언돔 요격무기, 소형 폭탄, 기관총 탄약, 레바논 남부 군사활동 정보 공유 등을 요구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는 동맹인 이스라엘에 대한 지지뿐 아니라 확전을 막아 제5차 중동전쟁을 차단하려는 목적으로 보인다. WP는 조 바이든 행정부가 레바논 무장단체인 헤즈볼라 등 주변세력에 “이스라엘을 공격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며 개입을 막는 데 총력을 다하고 있다고 전했다. 항모전단의 이동 역시 이슬람 무장세력에 대한 ‘경고’ 차원이라는 설명이다. 전날 레바논과 맞닿은 이스라엘 점령지에 박격포를 쏘며 참전 의사를 밝혔던 헤즈볼라는 일단 전투를 중단한 상태다.

배후설 이란은 ‘모르쇠’?

대규모 물량 공세로 중동 전운을 조기 진압하려는 미국이지만, 그 앞에 놓인 걸림돌이 적지 않다. 가장 큰 위협은 시아파 종주국으로 이스라엘과 적대 관계인 이란이다. 그간 하마스와 이슬라믹 지하드를 지원해 온 이란이 이번 기습 공격의 배후라는 관측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날도 미 월스트리트저널은 하마스와 헤즈볼라, 이란혁명수비대(IRGC)가 이스라엘 공격을 공모했고 지난 2일에 이란의 안보 당국자들이 이번 기습을 ‘승인’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유엔 주재 이란 대표부는 성명을 통해 “팔레스타인의 대응은 자체적으로 이뤄진다”며 배후설에 선을 그었다. 미국도 아직은 이란 배후설에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블링컨 장관은 이날 “이스라엘과 다른 국가의 관계 정상화에 반대하는 이들이 하마스와 헤즈볼라, 그리고 이란이라는 건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라면서 이란의 관련성을 언급했다. 그러면서도 “이란이 이번 공격을 계획하는 등 직접적으로 관여했다고 보여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덧붙였다.

이스라엘-사우디 국교 논의도 ‘보류’

바이든 대통령이 대선을 앞두고 치적으로 내세우려던 이스라엘과 사우디의 관계 정상화 논의에도 찬물이 끼얹어졌다. 사우디가 하마스의 기습 공격 이후 수교 협상을 보류했다고 미 뉴욕타임스(NYT)가 전했다. 이스라엘의 보복으로 팔레스타인 사상자가 많아질 경우 중동의 ‘큰형님’인 사우디로서는 이를 외면하긴 어려울 전망이다. 사우디는 하마스의 공격을 규탄해 달라는 미국의 요구에도 응하지 않았다.

다만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는 이전 사우디 지도자들보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가 하마스와 이란의 위협을 더 크게 보고 이번 사태의 대응 방안을 논의할 수 있다고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내다봤다.

이스라엘과 사우디 간 수교로 중동의 정세 안정을 꾀하려던 미국 입장에선 이란과의 전면적 갈등은 부담스럽고 실익도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AFP는 국제위기그룹(ICS)의 이란 담당자 알리 바에즈를 인용해 “미국이 이란과의 긴장을 끌어올려 얻는 것은 기존의 갈등에 더한 이란의 핵 위협뿐”이라고 지적했다.

우크라, 중국도 변수로 떠올라

또 다른 변수는 우크라이나와 중국이다. 이미 우크라이나 전선(戰線) 관리도 버거운 바이든 미국 행정부에 또 다른 전쟁 발발은 말 그대로 위기다. 바이든 정부는 우크라이나 추가 지원에 더해 이스라엘을 위한 자금을 의회에 요청할 계획으로 알려졌지만, 미 의회의 동의를 어디까지 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진작부터 공화당을 중심으로 우크라이나 지원 회의론이 거세진 터였다. CNN방송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길어지면서 바이든의 해외 개입주의 외교 노선에 대한 불만이 쌓였다”고 설명했다.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 양측 모두 미국의 지원 규모에 불만을 표할 가능성도 있다.

중동에서 영향력을 높이려는 중국도 계산이 복잡해지기는 마찬가지다. 올해 3월 사우디와 이란의 수교 재개를 끌어냈던 중국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에도 협상을 주관할 용의가 있다며 적극적인 개입 의지를 보였다. 중동 분쟁의 중재자로서 국제적 위상을 다지겠다는 구상이었지만 이번 전쟁 위기로 백일몽에 그칠 공산이 크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연일 중국을 향해 “이스라엘의 편에 서라”고 날을 세우며 공격을 이어가는 양상이다.

전혼잎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