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담당 공무원의 눈물… "열심히 일한 결과는 징계, 구속, 또는 사망"

입력
2023.10.10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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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공무원의 눈물]
방재안전직렬 공무원 뽑은 지 10년
지자체별 재난 업무 담당 2~3명뿐
산불, 호우·태풍, 폭설 4계절 비상 대기
확충 요구에 현실은 기존인력 쥐어짜기
"재난 대응 돌려막기 피해는 결국 국민"


“아들이 공무원 됐다고 그렇게 좋아하시던 아버지가 이젠 그만두라셔요. (충북)오송 지하차도 참사 책임을 떠안은 이들처럼 저도 수사받고 결국 잘리는 거 아니냐는 걱정이 크신 거죠. 열심히 일해도 그 끝은 징계와 구속, 사망이란 자조 섞인 선배들의 말이 왜 나왔는지 이제 알 것 같아요.

영남 지역 한 구청에서 5년째 방재안전직렬로 근무 중인 김준성(가명‧33)씨는 “올해 안에 사직서를 낼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속한 구청에서 재난 담당 공무원은 김씨를 포함한 두 명. 계속되는 야근과 예상치 못한 재난‧참사에 대한 불안감,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부담감은 5년 전 사명감 넘치던 신임 공무원의 모습을 180도 바꿔 놨다.

정부가 재난 대응 전문성 강화를 위해 방재안전직렬을 만든 지 10년이 지났지만, 정작 일선 현장에선 ‘빛 좋은 개살구’에 그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적은 인원에 비해 주어진 업무가 많다 보니 매달 수십 시간의 초과근무를 해야 하는 반면, 사명감 고취를 위한 평가‧수당은 그에 한참 못 미친 탓이다. 방재안전직 이탈 가속화로 전문성 확보가 어렵고, 빈자리를 일반직이 메우면서 또다시 전문성이 떨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한국일보와 인터뷰한 전·현직 재난 담당 공무원 4명은 “재난 업무 폭탄 돌리기의 피해는 국민이 고스란히 입게 된다”고 한목소리로 우려했다.

각 지방자치단체에 2, 3명 배치된 방재안전직 공무원이 맡은 업무는 각종 안전점검부터 재난 관리, 안전정책 수립까지 폭넓다. 연이은 대형 참사로 안전에 대한 관심이 커졌지만, 충원은 없다보니 기존 인력을 쥐어짜는 상황이다. 축제 관련 업무로 일주일째 야근하고 있다는 광역시청 소속 A씨는 “봄·가을엔 산불, 여름엔 호우·태풍, 겨울엔 폭설 대응으로 밤새 동원되는 일이 허다하다”며 “갑작스러운 비상대응소집에 택시 타고 시청으로 온 경우도 수두룩하고 2주 가까이 집에 못 들어간 적도 있다”고 토로했다. 전국의 방재안전직렬 공무원은 791명으로 전체 공무원의 0.25%에 불과하다.

방재안전직 신규 임용 공무원의 절반이 퇴사하는 등 재난 인력 ‘구인난’을 막기 위해 정부는 일반 행정직 공무원에게도 재난 업무를 맡기고 있다. 그러나 상황은 바뀌지 않고 있다. 올해 7월 퇴직한 전직 방재안전직 공무원 B씨는 “한 일반직 공무원이 풍수해 업무를 맡게 되자 곧바로 1년 휴직을 내더라. 재난 관련 업무 처리를 위해 다른 부서에 협조 요청을 해도 자기 소관이 아니라며 회피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토로했다.

구청에서 일하는 방재안전직렬 공무원 C씨는 “재난‧참사가 발생하면 옷을 벗거나 징계를 받는 현장 공무원과 달리, 윗선은 별다른 책임을 지지 않는다”며 “재난 담당 공무원에게만 책임을 떠넘기니 누가 하려고 하겠느냐”고 꼬집었다. 오송 지하차도 참사 관련해 공무원 34명이 직무유기로 수사를 받게 됐지만, 최고 책임자인 김영환 충북도지사와 이범석 청주시장은 비켜갔다.

준성씨를 포함해 뜻이 있는 방재안전직렬 공무원들이 행안부의 ‘온국민소통’에 방재안전직 확충과 재난안전 업무 전문성 확보 방안을 여러 번 제안했으나, 모두 채택되지 않았다. 지자체 재량으로 결정할 사안이란 이유에서다. 온국민소통은 정부가 국민들로부터 정책 제안을 받는 온라인 창구다. “힘들어도 안전 관련 업무니까 열심히 해야 한다며 스스로를 다독여 온 제가 이젠 안쓰럽죠. 업무에 더 집중할 수 있게 해달라는 건데 그게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 수화기 너머 들려온 준성씨의 목소리는 많이 지쳐 있었다.


세종= 변태섭 기자
세종= 조소진 기자
세종= 정민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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