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러시아 군사 부문을 지원한 중국 기업 40여 곳을 무더기로 제재했다. 다음달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미중 정상회담 개최를 추진 중에 이뤄져 눈길을 끈다.
미국 상무부는 6일(현지시간) 러시아의 군과 방위 산업을 지원한 것으로 의심되는 중국 기업 42곳을 포함한 49개 외국 법인을 수출 통제 대상인 이른바 '블랙 리스트'에 올렸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중국 기업 외에 핀란드, 독일, 인도, 터키, 아랍에미리트(UAE), 영국 등의 기업 7곳도 제재 대상에 포함됐다.
이들 중 일부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민간 부문을 공격할 때 미사일이나 무인기(드론)를 정확하게 유도하는데 사용하는 미국산 반도체 기술을 러시아 측에 공급했다고 미국 상무부는 밝혔다. 매튜 액설로드 미 상무부 수출 집행 담당 차관보는 "만약 러시아 국방 부문에 미국 고유 기술을 제공하면 우리는 그것을 찾아내 조치를 취한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출 통제 대상 명단에 오른 외국 기업은 물자 수출 전 미국 정부의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사실상 허가받기는 어렵다.
이번 조치는 중국을 향한 미국의 경고로 풀이된다. 지난달 북러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대(對)러시아 무기 제공이 본격 시작됐다는 관측이 나온 직후에 이뤄졌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대러 군사지원에 나서지 못하도록 주의를 주는 게 시급하다는 판단에 따른 조치로 보인다. 특히 이달 중순 중국이 주최하는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 정상포럼 계기로 중러 정상회담이 열리기 전에 중국에 무언의 경고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이 미국 의도였을 가능성이 있다.
중국은 강하게 반발했다. 중국 상무부 대변인은 7일 홈페이지를 통해 밝힌 입장에서 "이는 전형적인 경제적 강압이자 일방주의적 패권주의 행태"라며 "중국은 단호히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즉시 잘못된 처사를 바로잡고 중국 기업에 대한 비합리적 탄압을 중단해야 한다"며 "중국은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해 중국 기업의 합법적 권익을 굳게 수호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