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것인가

입력
2023.10.05 04:30
26면

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검찰은 이제 정권을 잡은 진영의 전유물처럼 돼 버렸습니다.”

법원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거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구속영장을 기각한 후 한 검찰 고위 관계자는 이렇게 하소연했다. 검찰 수사가 ‘정치인 이재명’이 아닌 ‘피의자 이재명’에 대한 것이지만, 정권을 쥐고 있는 여당이 검찰을 동원해 야당 대표를 탄압한다는 프레임으로만 비친다는 얘기다.

달리 말하면, 사법의 영역에 정치가 개입돼 순전히 법리로만 판단이 내려지지 않았다는 의미일 테다. 실제 이 대표 영장 기각 후 서울중앙지검 수사팀 관계자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피의자(이 대표) 신분이 그렇다 보니 정치적으로 포장되는데 안타까운 부분이 있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들린다.

이렇게 검찰 수사가 정치인, 특히 야당 소속 정치인을 겨냥할 경우 수사선상에 오른 정치인들이 ‘정치 탄압’이라거나 ‘정치 검찰’이라고 맞불을 놓은 사례는 수없이 많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 검찰의 ‘적폐청산’ 수사가 자신을 향하자 “현 정부의 적폐청산 행보는 정치보복”이라고 말했다. 2021년 민주당 전당대회 ‘돈 봉투’ 의혹의 핵심인물로 지목돼 구속기소된 윤관석 의원은 올해 6월 국회 본회의에서 체포동의안이 부결됐을 때 “정치 검찰의 짜 맞추기 수사는 부당하다는 것이 입증됐다”며 결백을 강조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전 대통령은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자신의 얘기와 달리 자동차 부품업체 다스(DAS)의 회삿돈 횡령 등 혐의로 2020년 10월 대법원에서 징역 17년과 벌금 130억 원 등의 형이 확정됐다. 올 4월 첫 검찰 압수수색 당시 “돈 봉투 의혹과 아무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던 윤 의원도 첫 공판준비기일에서 송영길 전 당대표 당선을 위해 현금을 받은 사실 자체는 인정하면서 액수가 다르다는, 다소 겸연쩍은 주장을 했다.

결국 이렇게 정치인의 비위가 드러나도, 검찰이 ‘정권의 사냥개’라는 비난을 받는 건 과거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됐던 행태 때문이다. 정권이 바뀔 무렵에는 힘을 잃어가는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가 시작됐고, 정권 교체 후에는 어김없이 전 정권을 겨냥한 대형 수사로 이어지는 모습이 되풀이됐다. 검찰은 항상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한다고 얘기한다. 정권을 잡으면 부패하는 정치권의 고질적인 병폐 때문이라고 책임을 미룰 수도 있겠다.

그런데, 문제는 검찰 얘기를 곧이곧대로 들어주는 사람이 이제는 많지 않다는 점이다. 전 정권의 핍박 끝에 검찰 수장에서 물러난 뒤 바로 정치에 뛰어든 윤석열 대통령이 정권을 잡았기에 갖게 된 ‘업보’일 수도 있다.

안타까운 건 이 악순환이 당분간 반복될 것 같다는 점이다. 검찰은 정치권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테고, 정치권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검찰의 시선이 어딜 향하는지 주시할 수밖에 없을 테다. 검찰과 정치권의 이런 이상한 연결고리가 끊어지지 않는 한 피해는 국민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실질적 피해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만성 피로감’은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최근 방영된 드라마 ‘무빙’에 등장한 북한 요원 김덕윤(박희순)이 힌트일 수도 있겠다. 그는 악순환을 끝내기 위해 “죄는 희생을 강요하는 자에게 있다”는 말을 남기고 생을 마감했다. 현실에선 누가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것인가.

안아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