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물리학상, '100경 분의 1초' 세상을 연 과학자들에게... 5번째 여성 수상

입력
2023.10.03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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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토초 과학자 3명, 노벨 물리학상 영예
매우 빠른 전자 움직임 포착 가능케 해
안 륄리에 교수 "여성이라 더 특별하다"

올해 노벨 물리학상은 100경 분의 1초(아토초) 세상의 지평을 연 과학자 3명에게 돌아갔다. 이들은 아토초 단위로 매우 빠르게 움직이는 전자의 움직임을 포착하는 방법을 찾아냈다는 공로를 인정받았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3일 피에르 아고스티니(70)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교수, 페렌츠 크라우스(61) 독일 막스플랑크 양자과학연구소 교수, 안 륄리에(65) 스웨덴 룬드대 교수가 물리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이들의 실험이 인류에게 "원자와 분자 안에 있는 전자의 세계를 탐험할 수 있는 새로운 도구를 줬다"고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아토초가 뭐길래

일상에서 시간은 시, 분, 초, 영점 몇 초 등으로 인식되지만, 물리적으로 이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것들이 있다. 원자 안에서 원자핵을 빙빙 도는 전자가 대표적이다. 전자가 움직이는 속도는 100경 분의 1초, 즉 아토초 단위를 이용해야 할 정도로 무척 빠르다.

이에 물리학계는 전자의 움직임을 포착해낼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노력해왔다. 전자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파악해야 미지의 세계를 규명할 수 있어서다. 이런 '아토초고속 카메라'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빛보다 훨씬 강한 빛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일반적인 빛으로는 전자가 움직이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토초 물리학의 대가인 수상자들은 극도로 짧게 빛이 지속되는 '펄스'(pulse)를 아토초 간격으로 구현하는 방법을 찾고, 발전시켜왔다. 이들이 아토초고속 카메라용 플래시를 만든 덕에 자연의 초고속 현상을 관측할 수 있게 됐다. 구체적으로 아고스티니 교수와 륄리에 교수는 아토초 펄스 생성 방법을, 크라우스 교수는 이를 응용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받을 만한 학자들... 코쿰 교수 빠져 의아"

국내 초고속 광학 분야 전문가인 남창희 기초과학연구원(IBS) 초강력 레이저과학연구단 단장은 "아토초 과학 분야가 노벨상을 받을 때가 됐다고 생각했고, (수상자들도) 예상됐던 인물"이라며 "이들과 함께 아토 과학의 대가로 불리는 폴 코쿰 캐나다 오타와대 교수가 수상자에서 빠진 것이 더 놀랍다"고 설명했다. 코쿰 교수는 크라우스, 륄리에 교수와 같은 업적으로 지난해 '예비 노벨과학상'의 하나인 '울프상'을 수상한 바 있다.

한편 륄리에 교수는 역대 다섯 번째 여성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의 영예도 안았다. 역대 여성 수상자는 1903년 마리 퀴리, 1963년 마리아 괴퍼트 메이어, 2018년 도나 스트릭랜드, 2020년 안드레아 게즈였다. 륄리에 교수는 "(노벨 물리학상은) 가장 권위 있는 상을 받게 돼 너무 기쁘다. 믿을 수 없다"면서 "알다시피 이 상을 받은 여성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매우 특별하다"고 감격스러워했다.

노벨위원회는 생리의학상·물리학상에 이어 4일 화학상, 5일 문학상, 6일 평화상, 9일 경제학상 수상자를 차례로 발표할 예정이다. 수상자에게는 분야별로 1,100만 스웨덴 크로나(13억4,000만 원)의 상금이 수여된다. 노벨상 시상식은 알프레드 노벨의 기일인 12월 10일이 낀 '노벨 주간'에 스웨덴 스톡홀름(생리의학·물리·화학·문학·경제상)과 노르웨이 오슬로(평화상)에서 열린다.

오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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