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처분하는 현명한 방법 [이혜미의 활자예찬]

입력
2023.10.07 04:30
10면

편집자주

매주 출판 담당 기자의 책상에는 100권이 넘는 신간이 쌓입니다. 표지와 목차, 그리고 본문을 한 장씩 넘기면서 글을 쓴 사람과, 책을 만드는 사람, 그리고 이를 읽는 사람을 생각합니다. 이혜미 기자가 활자로 연결된 책과 출판의 세계를 격주로 살펴봅니다.

이사를 준비하며 빼곡한 책꽂이 앞에서 눈앞이 깜깜해졌습니다. 이삿짐 박스에 담을 책을 솎을 엄두가 나지 않아 일을 미룬 지 수주가 흘렀습니다. 읽었지만 언젠가 참고할 법한 책, 막연히 소장하고 싶은 책, 사놓고 표지조차 펴지 않은 책을 앞에 두고 번뇌합니다. '언젠가는 볼 것 같은데...'

'세계 최고의 독서가'로 불리는 작가 알베르토 망구엘은 3만5,000권의 장서를 분류하고 처분하며 느낀 단상을 '서재를 떠나보내며'라는 에세이에 담았습니다. "상자에 집어넣을 책을 꺼내기 위해 사다리를 오르내리고, 책들 앞에 봉헌 예물처럼 놓였던 장식품과 사진들을 치우고, 책을 한 권 한 권 서가에서 빼내고, 그 책을 종이 수의 속에 집어넣는 것은 우울하고 사색적인 행위로 마치 오래도록 지속되는 작별 인사 같은 것이다."

처분은 더욱 어렵습니다. 막연하게 세 가지 방법이 떠오릅니다. ①대형 중고서점에 내다 팔기 ②친구에게 나눠주기 ③분리수거 폐기물로 버리기. 저는 ③번을 주로 택합니다. 출판 담당 기자이자 여러 권의 책을 출간한 사람치고는 잔혹하고 무신경하다고요?

나름의 이유는 있습니다. 한 권의 책을 사는 것엔 출판계와 작가를 향한 응원도 포함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플랫폼에만 수익을 가져다주는 중고서점에 책을 내다 파는 게 썩 내키지 않습니다. 일일이 구별해 친구에게 나누는 것도 쉽지 않지요. 도서관 대출횟수에 연동해 저작권료를 지급하는 '공공대출권'이 부재한 한국에서는, 도서관에 기증한들 저자와 출판계에 큰 도움이 되진 않습니다. 결국 한 권의 책이라도 더 팔릴 기회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은, 폐기뿐이란 슬픈 결말에 다다릅니다.

망구엘은 "모든 서재는 일종의 자서전"이라 했어요. 책을 버릴 때마다 나의 일부도 손실되는 듯한 슬픈 감상에 젖곤 합니다. 저자와 출판계를 존중하면서도 행복하게 책을 처분하는 지혜를 여러분께 구합니다.

이혜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