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이래 ‘뉴프랑스’라 불리던 프랑스 식민지 캐나다는 북미 식민지 전쟁인 영-프 전쟁에서 1759년 프랑스가 패배하면서 영국의 식민지가 됐다. 모피무역의 중심지였던 지금의 퀘벡에 모여 살던 프랑스인들은, 집과 재산을 포기하고 떠나지 않는 한 영국 여왕의 통치를 받는 처지가 됐다. 근년 기준 캐나다 전체 인구의 약 4분의 1을 차지하는 프랑스계 시민 대다수의 선조가 그들이다. 그들 일부의 심중에는 하루아침에 지배자에서 피지배자로 밀려난 데 대한 울분과 민족주의에 기반한 저항의식이 도사리고 있다. 캐나다 10개주 가운데 가장 부유한 지역으로 꼽히는 퀘벡주 분리주의 운동이 거기서 발아했다.
1970년 10월 5일, 자칭 ‘퀘벡해방전선(FLQ)’ 조직원 4명이 영국무역청장 제임스 크로스(James R. Cross)를 납치했다. FLQ는 1963년 출범 이래 200여 건의 폭탄 테러 등을 벌인 급진분리주의단체. 그들은 구속된 조직원 23명의 석방을 요구했고, 연방 정부가 거부하자 닷새 뒤 주 내각 최고령자였던 피에르 라포르테(Pierre Laporte)까지 납치했다.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중시하는 일련의 정책으로 지금도 캐나다 자유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당시 연방수상 피에르 트뤼도는 사태 11일 만인 16일 ‘전쟁조치법(War Measures Act)’을 발동했다. 영장 없는 수색과 체포, 변호사 조력 없는 장기(최장 21일) 구금 등을 허용하는, 캐나다 역사상 최초의 계엄령이었다. 연방군이 주도 몬트리올 등 주요 도시에 투입됐다.
FLQ에 우호적이던 퀘벡 민심은, 17일 FLQ에 의해 교살당한 라포르테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급변했다. FLQ 리더들은 잇달아 체포돼 종신형 등을 선고받았다. 알려진 것과 달리 회원수 35명의 작은 조직에 불과했던 조직 역시 저 사건으로 사실상 와해됐고, 퀘벡분리운동의 기세도 얼마간 꺾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