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상반기 한국 노동시장은 예상외로 좋은 성적을 보였다. 취업자가 37만여 명 늘어나 고용률은 높아졌고 실업률은 낮아졌다. 경제성장률이 둔화되는 중이라 더 돋보이는 선전이었다. 그러나 이 결과에 바로 고개를 끄덕일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지표를 쪼개 보면 의아함에 일리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 경제의 주력인 제조업 고용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20~40대 남성 취업자도 감소했다.
제조업 고용 감소는 일차적으로 경기 부침이 작용한 결과이기는 하다. 자동차와 이차전지 등 전기장비 제조업은 수출 호조로 고용이 증가했지만, 반도체 부진으로 전자부품, 정보통신기술(ICT) 장비 제조업 고용은 감소했다. 따라서 제조업 고용이 장기적 감소 추세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그런데 지표를 더 쪼개면 또 다른 점이 보인다. 지난 10년 동안 전산업은 물론 제조업 안에서도 관리·전문직 종사자 비중은 늘어난 반면, 생산직은 전반적으로 줄었다. 글로벌 제조 기업의 생산 시설 해외 이전, 숙련·지식 편향적 기술의 노동 대체 현상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이는 한국 경제가 지식 경제로 급격히 전환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생산직은 40~50대 노동자 중에서는 여전히 비중이 높지만 20~30대 주요 직종에서는 한참 비켜나 있다. 압축성장의 결과가 특정 세대와 직종, 학력집단에 더 부정적일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전환기를 급히 관통 중인 ‘한국호’가 전환에 취약한 집단을 바다에 빠뜨리지 않고 항해할 수 있을지다.
전환기 경제에서 성장 주력 집단에 대한 편향적 보상은 불평등을 심화하고, 성장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한계로 작용할 수 있다. 앞선 예로 독일과 스웨덴은 각자 성장동력을 갖추었지만 상이한 전환 모델을 보여준다. 전통 제조업의 수출 우위를 지키는 데 주력한 21세기 독일의 경우, 인더스트리 4.0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전환, 생산직 노동자의 숙련 제고 노력이 수출 부문에 집중되었다. 수출 경쟁력을 위한 비용 압박은 결국 부문 간 불평등을 초래했다. 독일은 유럽 내에서도 저임금 비중이 17%로 높고, 임금 상위 10%와 하위 10% 집단 간 차이가 3.3배에 달한다.
반면, 균형성장모델로 평가받는 스웨덴은 전통 제조업의 근간을 유지하기보다 지식 기반 산업 다각화에 전환의 초점을 맞췄다. 국가는 혁신 및 교육정책으로 지원했고 기업집단들은 전통 산업과 ICT 신산업 사이의 조직적 기술적 허브 역할을 했다. 서비스 부문에서도 강한 노동조합은 업종 간 균형을 맞추는 데 일조했다. 보수 정부는 1990년대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과 공공 서비스 인프라를 대대적으로 확대했고 사민당 정부도 이를 계승했다. 덕분에 2021년 기준 임금 상위 10%와 하위 10%의 차이가 2.17배로 작다.
한국은 어느 쪽에 가까울까? 자동차 등 전통 제조업이 강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숙련 생산직의 배제에 기반한다는 점에서 독일과 다르다. 전환에 적극적인 기업 집단의 존재, 정보기술(IT) 교육에 열성적인 정책 등은 스웨덴과 유사하지만 국가와 노조의 역할에 차이가 크다. 그러다 보니 최근 저임금 비중이 낮아졌는데도 16% 수준이고, 임금 상위 10%와 하위 10% 그룹 차이는 3.6배로 높다. 고등교육비의 개인부담률도 선진경제 국가 중 가장 높다.
한국은 복합전환기 한가운데를 갈등 속에 지나고 있다. 거시지표만 보고 길을 잡았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맞을 수 있다. 여러 세부 지표들은 키의 방향을 사회적 한계 극복에 맞춰야 한다는 점을 알려주고 있다. 불평등 구조에 편승한 이데올로기 정치가 아니라 고용 인프라 확충, 격차 축소에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