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용돈만 기다리고 있어요."
26일 오후 서울 성북구의 한 골목에서 만난 고등학생 A군. 휴대폰만 들여다보던 그는 오매불망 추석 용돈을 기대하는 사연을 털어놓았다. 이유는 '사설토토'라 불리는 불법 스포츠 도박에 쓸 돈을 구하기 위해서다.
원래 A군은 룰렛, 바카라(두 장 카드를 더한 수 끝자리가 9에 가까운 쪽이 이기는 게임) 같은 게임 도박에 집중했다고 한다. 그런데 항저우 아시안게임 개막 이후엔, 스포츠 토토에 도전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좋아하는 프로게이머가 아시안게임에 출전한다는 소식에 e스포츠 베팅을 해볼 생각"이라며 "주변 친구 두 명도 아시안게임 이후 e스포츠 베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아시안게임이 시작되면서 불법 사설 스포츠 토토가 다시 활개를 치고 있다. 특히 불법 토토사이트들이 아시안게임에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e스포츠 경기에 돈을 걸도록 하고 있어, 10대 청소년과 20대 청년들의 불법 토토 신규 유입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맞아 신규회원을 모집한다는 불법 토토 사이트 홍보 글이 다수 게재됐다. "사이트 가입 후 처음으로 돈을 충전하면 추가 보너스를 지급한다"는 홍보문구로 신규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고등학생 김모(17)군은 "국제대회가 열리면 항상 관심이 토토로 쏠린다"며 "친구끼리 좋은 사이트를 공유하기도 한다"고 했다.
학생들도 불법임을 알지만 유혹을 뿌리치긴 쉽지 않다. 현재 국민체육진흥공단이 공식 스포츠토토를 운영하고 있지만 청소년은 이용할 수 없다. 반면 불법 토토는 미성년자도 계좌만 있으면 가입할 수 있다. 게다가 공식 사이트에는 e스포츠 종목 토토가 없는데, 대다수의 불법 사이트에는 이번 아시안게임 e스포츠 종목에 국가 대항전 의미를 부여하며 경기별 토토를 진행한다. 취업준비생 김모(27)씨도 "리그 오브 레전드(LoL)를 좋아하는 친구끼리 한번 해보자는 얘기를 하곤 한다"고 했다.
국제대회 때마다 사설 토토 사이트가 독버섯처럼 고개를 내밀지만, 단속은 쉽지 않다. 경찰이 26일 "청소년을 유혹하는 온라인 도박사이트 및 광고 매체에 대한 특별 단속을 6개월간 벌인다"고 밝혔지만, 하지만 불법 사이트 수가 워낙 많고 해외 인터넷 주소(IP)를 사용하는 만큼 한계는 여전하다. 경찰 관계자는 "도메인 주소도 매번 바뀌고 운영자를 특정하는 게 어려운 건 사실"이라고 했다.
미성년자와 젊은 층을 노리는 불법 토토 사이트 확산은 청년과 청소년 도박 중독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10대 청소년 도박중독 진료 인원은 2019년 93명에서 2021년 127명으로 급증했다. 20대 도박중독 진료 인원도 폭증하고 있다. 2019년 535명이던 진료 인원은 지난해 846명으로, 3년 새 58.1% 늘었다.
전문가들은 청소년의 불법 토토사이트 접근을 적극적으로 차단하는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이해국 가톨릭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유럽은 인터넷 유해 환경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는 시스템이 마련돼 있다"며 "방송통신위원회가 보다 적극적으로 접근성 차단 노력을 보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