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깊은 산골에서 숲속 힐링 vs 아무것도 안 하고 ‘멍 때리기’

입력
2023.09.26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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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이색 숙소 하이힐링원과 밭멍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숲속에서 힐링하는 시설이 있다. 밭두렁 산책 가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게 없는 숙소도 있다. 강원 영월 산골 상동읍에 있는 두 가지 이색 숙소다.

지난 21일 영월 단풍산 자락 하이힐링원으로 들어서자 넓은 잔디밭과 자작나무 산책로를 뛰어다니는 초등학생들의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도전힐링탐험대’ 미션을 수행 중인 이들은 카페에서 꽃차를 내리고, 쿠킹스튜디오에서 팥빙수를 만들었다. 장난기 가득하면서도 진지한 표정이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만든 먹거리니 밋밋한 차 맛도 뭔가 특별하고, 달콤한 팥빙수는 더욱 입맛에 당기는 모양이다.



하이힐링원은 강원랜드 사회공헌재단(산림힐링재단)이 각종 행위중독을 해소하기 위해 만든 시설이다. 숙박과 함께 주변 산림자원을 활용한 여러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강원랜드’ ‘행위중독’ 두 단어에서 도박중독자를 위한 시설이라 여기면 오해다. 하이힐링원에서 지칭하는 행위중독은 일 중독, 스마트폰 중독 등 일상 속 중독을 의미한다. 이용자에게 스마트폰을 강제로 회수하지는 않는다. 대신 숲길 산책과 달빛 트레킹, 아로마테라피, 해먹테라피, 목공예, 갖가지 미션 수행으로 자연스럽게 디지털 기기에서 멀어지게 한다. 온라인에 중독된 몸과 마음의 독소를 빼내는 일종의 디지털 디톡스다.




해발 500m 부근 산중에 위치한 숙소 로비로 들어서면 커다란 통유리창으로 맞은편 녹색 산자락이 병풍처럼 걸린다. 모든 객실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실내 강의실 넓은 창에도 자작나무숲이 걸리고, 카페 통창으로도 맞은편 산 능선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주변 골짜기에는 약 2시간 정도 산책할 수 있는 숲길이 이어진다. 물소리 바람소리 풀벌레 소리가 자연스럽게 스트레스를 덜어준다. 소풍과 해먹테라피 등 숲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곳이다.

단체 이용객이 많지만 일정 인원만 채워지면 동창회나 계 모임, 가족도 이용할 수 있다. 단 조건이 있다. 공익 목적을 띤 시설인 만큼 2개 이상 프로그램에 꼭 참여해야 한다. 각 프로그램은 회당 가격으로 책정돼 인원이 많을수록 비용이 내려간다. 2인 1실 숙박, 저녁과 아침 두 끼 식사가 포함된 가격은 대략 1인 13만 원 선이다. 개인은 프렌트립을 통해 숙박 없이 당일 프로그램도 이용할 수 있다.

하이힐링원에서 약 3km 떨어진 곳에 ‘밭멍스테이’라는 이색 숙소가 있다. 도로변에 작은 간판을 내건 정도여서 일부러 찾지 않으면 지나치기 쉽다. 숙소도 소박하기는 마찬가지다. 허름한 농가주택 2층 건물 중 1층은 사무실, 2층을 숙소로 꾸몄다. 2인이 사용할 수 있는 단 하나뿐인 방은 에어비앤비를 통해 판매한다.

잔잔한 호수나 냇물을 멍하니 바라보는 게 ‘물멍’, 타닥타닥 장작 타는 소리와 벌건 불기운을 보며 잡생각을 털어내는 게 ‘불멍’이라면, ‘밭멍’은 소박한 농촌 풍경에서 위안을 얻고 일상의 무게를 덜어내는 행위다. 그러니 주 이용객은 여행보다 쉬러 오는 사람이다. 정말 아무것도 할 게 없어 강변이나 밭두렁을 어슬렁거리다 닭장도 기웃거리고 강아지에게 말도 건네는 식이다. 그럼에도 “이곳의 구성원이 된 듯해 느낌이 좋았다” “지친 몸과 마음을 이곳에 와서 힐링했다” “생각을 정리하고 싶을 때 계속 생각날 것 같다” 등 방명록엔 칭찬 일색이다.

밭멍은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는 숙소다. 대나무를 재료로 한 휴지와 키친타월을 사용하고 고체 샴푸와 샤워용 비누를 제공한다. 일회용 쓰레기를 많이 유발하는 바비큐는 불가하다. 대신 찌개와 밑반찬 등 주인이 직접 만든 채식 위주의 밀키트를 제공한다.



밭멍은 김지현·지영 자매가 운영한다. 언니 김지현 대표는 호텔에서 근무하다, 동생 지영 팀장은 치기공사로 일하다 귀농을 결심했다. 숙소 뒤편 비탈밭이 이들의 일터다. 레몬밤 차이브 쑥부쟁이 바질 케일 등 허브 식물을 잔뜩 심었는데, 진짜 농부가 보면 잡초밭이나 마찬가지다. 밭은 공중에서 보면 나뭇잎 모양으로 구획돼 있다. 줄기와 잎맥이 농로이고 그 사이에 작물을 심었다. 그러니 “농사가 장난이냐?”라는 핀잔을 듣기 일쑤다. 어머니 한은자씨도 처음에는 농사짓겠다는 두 딸을 극구 말렸지만 지금은 무심한 척 후원자가 됐다. “제초제 치면 끝날 일을 유기농 무농약으로 하자니 얼마나 힘들어요? 그래도 요즘은 (작물 간 상호작용을 고려해 농사를 짓는) 자식들 방식을 따라가며 오히려 배우고 있어요.”





작년에 체험으로 왔다 영월군에서 지원하는 워킹홀리데이 프로그램으로 밭멍에 취업한 유지희 씨도 틀에 갇히지 않는 삶이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사실 도시 생활보다 더 바쁘고 시간이 부족한데 생기가 있어요.” 아무것도 즐길 게 없지만 밭멍 이용자들이 충만한 이유가 엿보인다.

영월=글·사진 최흥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