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아우를 찌른 형님은 이기고도 복잡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눈물을 훔쳤다. 군 문제가 걸려 있는 아우의 앞날을 막은 것 같은 미안함이 담겼다. 그리고 5년 뒤 서로의 입장이 바뀌었다. 이번엔 아우가 형님의 대기록을 막아섰다. 아우는 “형이 왜 그때 울었는지 이해가 된다”고 말했다.
남자 펜싱 사브르의 ‘훈남 검객’ 오상욱(26·대전광역시청)이 5년 만에 성사된 ‘살아 있는 전설’ 구본길(34·국민체육진흥공단)과의 결승 리턴 매치에서 설욕했다. 오상욱은 25일 중국 항저우 전자대학 체육관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남자 펜싱 사브르 개인전 결승에서 구본길을 15-7로 제압했다.
둘은 5년 전 2018 자카르타-팔렘방 대회 때도 결승 외나무다리에서 만났다. 당시엔 구본길이 신성이던 오상욱과 접전을 벌인 끝에 15-14, 짜릿한 1점 차 승리를 거두고 개인전 3연패를 이뤘다. 하지만 두 번째 맞대결 결과는 달랐다. 한층 더 성장한 오상욱이 한 수 위의 기량을 뽐내며 아시안게임 개인전 첫 금메달을 따냈다. 이로 인해 한국 선수 최초로 아시안게임 개인전 4연패에 도전했던 구본길의 대업은 물거품 됐다.
오상욱은 경기 후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서 취재진과 만나 “자카르타 대회 때 후회가 많이 남아 지더라도 내 기술을 다 써보자는 생각으로 임했다”며 “리벤지 매치에서 (아시안게임) 첫 금메달이 나와 의미가 있다”고 소감을 밝혔다. 하지만 이내 오상욱은 “이겼을 때 한편으로는 마음이 쓰였다”면서 “형이 왜 울었는지 이해가 된다”고 심경을 털어놨다.
하지만 금메달 대신 은메달을 목에 건 구본길은 ‘쿨’했다. 그는 “4연패가 쉬운 게 아니라 마음 내려놓고 왔다”며 “기록에 도전한 자체만으로도 영광”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5년 전엔 마음이 불편했다. 지금은 둘 모두 홀가분한 상태에서 붙었기 때문에 더 후련하다”며 미소 지었다.
개인전을 마친 둘은 서로에게 겨눴던 칼을 거두고 오는 28일 남자 사브르 단체전에서 힘을 모아 금메달에 도전한다. 남자 사브르 대표팀은 세계 최강을 자부하는 만큼 금메달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단체전은 구본길의 역대 한국인 최다 금메달 타이기록(6개)이 걸려 있어 중요하다. 현재 5개의 금메달을 수집한 구본길은 1개를 보태면 수영의 박태환과 승마의 서정균, 양궁 양창훈, 펜싱 남현희, 볼링의 류서연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오상욱은 “형에게 반드시 한국인 최다 금메달을 안겨 드리고 싶다”며 의욕을 불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