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일터에서 성차별, 성희롱 등 어려움을 겪는 여성노동자들을 지원해 온 '고용평등상담실' 19곳에 대해 내년부터 예산 지원을 전면 중단하기로 했다. 고용노동부는 민간 위탁 방식을 바꿔 직접 상담실을 운영한다는 계획이지만, 여성·시민단체들은 "여성노동자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모두 놓아버린 것"이라며 예산 복구를 요구했다.
전국고용평등상담실(이하 고평실) 네트워크와 197개 시민사회단체는 25일 국회 앞에서 '24년간 여성노동자를 지켜 온 고평실 폐지, 퇴행하는 고용부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노동 현장에서 갖가지 고충을 겪는 여성노동자를 위한 최후의 보루가 고평실"이라며 "적은 예산으로 운영되는 고평실 소속 상담원들은 열악한 처우를 견디며 여성노동자 곁에 있다는 사명감으로 활동해 왔지만, 고용부는 2024년 예산을 하루아침에 삭감하고 운영 주체들에게 그 과정과 이유에 대한 일언반구 설명조차 없었다"고 비판했다.
2000년 민간단체 10개소로 시작된 고평실은 서울여성노동자회·한국여성민우회 등 19개소에서 현재 운영 중이다. 채용·임금 등 고용상 성차별부터, 모성보호와 일·가정 양립, 성희롱·폭언 등 직장 내 괴롭힘까지 일터에서 여성노동자가 겪는 여러 문제를 상담하고 지원해왔다. 고용부에서 남녀고용평등법에 따라 고평실을 운영하는 민간단체에 예산을 주는 식이었다.
그런데 정부는 돌연 내년부터 직접 사업을 수행하겠다며 예산을 올해 12억여 원에서 내년 5억여 원으로 대폭 삭감했다. 고용부는 "고평실 상담 기능과 지방노동관서의 사건 조사·감독 기능과의 유기적 연계가 중요하다"면서 "고용청·대표지청 8개소에 고용평등상담 전담창구를 마련해 상담부터 권리구제까지 원스톱 지원을 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실제 고평실 업무를 해온 이들은 정부 상담실이 제 역할을 하기 어려울 것이라 우려한다. 고평실 네트워크 등은 "여성노동자들이 복잡한 문제를 안고서 고용부를 찾아가면 법 적용이 안 된다며 돌려보내기 일쑤고, 출산 전후 휴가를 받기 어려울 것 같다는 임신 노동자 고민에는 문제가 발생하면 오라고 답변하는 게 고용부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단체들은 "고평실은 노동법이 안 되면 민법, 형사법, 국가인권위법으로 가능한 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내담자와 동행해왔으며, 현장과 밀착해 문제를 파악하고 분석해 법 제도를 바꾸는 역할도 톡톡히 해왔다"고 강조했다.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2차 가해 문제를 법에 명문화하고,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의 실업급여 수급을 제도화하는 등 고평실이 역할을 해왔다는 것이다. 이어 "이대로라면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회적 약자들이 기댈 곳이 모두 사라진다"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