췌장에 지방이 껴 있으면 ‘내시경적 역행성 담췌관 조영술(ERCP)’ 후 췌장염이 발생할 가능성이 2배 높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만성 췌장염은 췌장암으로 악화할 가능성이 정상인보다 8배 높아 '췌장암의 씨앗'으로 불린다.
한림대 동탄성심병원 소화기내과 박세우(교신 저자)·이진·고동희·이경주 교수, 영상의학과 민선정 교수와 세브란스병원, 일산차병원, 한양대 구리병원 등 공동 연구팀은 ‘CT 검사로 측정한 췌장지방증이 ERCP 후 췌장염 발생에 미치는 임상적 영향’ 연구에서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ERCP는 내시경을 십이지장까지 삽입한 뒤 십이지장 유두부라는 작은 구멍을 통해 담관과 췌관에 조영제를 주입하고 병변을 관찰하는 시술이다.
이 시술은 담관 및 췌관에 생기는 질병들을 진단하고 치료까지 가능해 최근 관련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가 증가하면서 그 사용 빈도도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ERCP 후 흔한 합병증으로 급성 췌장염, 출혈, 천공(穿孔) 등이 발생할 수 있는데, 특히 급성 췌장염은 치료가 오랜 기간 필요하다.
ERCP 후 췌장염 발병률은 4.5%, 고위험군은 10% 로 알려져 있다. 지금까지는 ERCP 후 급성 췌장염이 왜 많이 발생하고 어떻게 예방해야 하는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번 연구로 췌장지방증이 ERCP 후 췌장염 발생 가능성을 높인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연구팀은 2020년 11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한림대 동탄성심병원과 각 병원에서 ERCP를 받은 527명을 대상으로 시술 후 췌장염 발생 여부를 조사했다. 환자 중 157명은 췌장지방증이 있었고, 나머지 370명은 췌장지방증이 없었다.
췌장지방증 여부는 컴퓨터단층촬영(CT) 검사를 통해 비장 실질의 밀도 음영과 비교해 췌장 내 지방의 침착 비율을 분석해 진단했다.
분석 결과, 췌장지방증이 있는 157명 중 14%(22명)에게서 췌장염이 발생했다. 췌장지방증이 없는 370명 중에선 6.2%(23명)가 췌장염을 보였다.
이에 따라 연구팀은 연령·성별·당뇨병·고혈압 등의 변수들을 조정해 ERCP 후 췌장염이 발생할 확률이 췌장지방증이 있으면 2.09배 높게 나타나는 것을 확했다.
박세우 교수는 “췌장지방증이 있는 환자에게 ERCP를 시행한 경우 비스테로이드성 항염증제(NSAID) 처방과 같은 예방 조치를 시행하는 근거가 되는 연구”라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이번 연구에서는 췌장지방증 발생 위험 인자로 연령·여성·당뇨병·고혈압 같은 대사증후군이 꼽혔다”며 “나이가 들수록 췌장 실질(實質)이 감소하고 지방으로 바뀌는데, 지방세포는 지방산을 저장하고 방출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염증을 유발하는 사이토카인·케모카인·아디포카인 등 대사물질 분비를 자극하므로 고령일수록 췌장지방증으로 인한 췌장염 발생에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인 ‘Gastrointestinal Endoscopy(Impact Factor 7.7)’ 8월호에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