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1일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가 치러진다. 내년 4월 총선에 앞서 수도권의 민심을 가늠해볼 수 있는 마지막 선거다. 국민의힘은 직전 구청장이자 이번 선거의 원인 제공자인 김태우 후보가 재등판했고, 더불어민주당은 경찰청 차장(치안정감) 출신 진교훈 후보가 나섰다.
이에 후보 등록 다음 날인 22일 현장을 찾아 민심을 들었다. 지난 대선 당시 강서구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의 득표율이 각각 가장 높았던 가양1·2동과 화곡본·8동을 집중적으로 돌아봤다.
구민 대부분은 투표에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정치엔 관심이 없다"고 손사래 치면서도 "그래도 투표장엔 나가려고 한다"는 주민이 많았다. 통상 기초자치단체장 보궐선거 투표율이 고작 30% 남짓인 것에 비춰 다소 이례적이다. 대학생 이모(20)씨는 "바빠서 정치엔 별로 관심이 없다"면서도 "투표엔 참여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강서구는 전통적으로 민주당 강세지역이다. 현재 지역구 3곳의 국회의원도 모두 민주당 소속이다. 화곡8동에서 만난 진모(64)씨는 "평생 민주당만 찍어 왔다"며 "저쪽(국민의힘)이 잘못해서 치르는 선거이니 당연히 민주당을 찍어야 하지 않겠나"라고 했다.
다만 진 후보의 인지도 부족이 여실히 느껴졌다. 진 후보 이름보다는 "민주당 후보를 찍겠다"고 대답하는 식이다. 2018년 조국 사태 당시 여론의 관심을 받은 김 후보와 대조적이다. 자영업자 노모(58)씨는 "진 후보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이번엔 정부를 좀 견제해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대법원 유죄 확정 판결로 구청장직을 상실한 김 후보의 재출마에 부정적 의견이 적지 않았다. 신방화역 인근에서 만난 박모(61)씨는 "선거 비용이 40억 원인가 든다는 거 아니냐"며 "굳이 그 사람이 다시 나온 것에 부정적인 생각이 많이 든다"고 지적했다. 스스로 국민의힘 지지자라고 밝힌 임모(42)씨도 "김 후보가 나왔으니 찍긴 하겠지만, 또 공천했어야 하는지 아쉬움이 있다"고 했다. 다만 장세남(60)씨는 "공익제보자이니 원래 했던 구청장직에 복귀하는 게 당연하다"면서 "여당 후보를 뽑아야 강서구가 더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강서구는 서울 다른 지역의 축소판으로 불린다. 도시개발사업이 진행된 마곡지구엔 국민의힘 지지층이 많고, 구도심인 화곡동엔 민주당 지지층이 다수다. 마곡지구가 있는 가양1·2동은 지난 대선에서 윤 대통령이 득표율에서 7.0%포인트 가까이 우위를 보였다. 성동·영등포·강동구 등과 유사하다.
이곳에선 윤석열 정부에 대한 실망감이 감지됐다. 기술교육원에 다니는 장승준(35)씨는 "지난 대선 때 윤석열 후보를 찍었는데 이번엔 차악으로 민주당 후보를 찍으려고 한다"며 "홍범도 장군 흉상 문제 등 최근 역사 문제로 실망을 많이 했다"고 했다. 이모(30)씨도 "윤 대통령이 너무 국민 의견을 안 듣는 것 같다"며 "후쿠시마 오염수도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나. 이런 걸 완전히 무시하는 거 같다"고 지적했다. 반면 한대수(75)씨는 "문재인 정권이 사회주의로 가기 전 정권이 바뀌어서 다행이다"며 "한미일 3국이 안보를 협력하도록 한 게 가장 잘하는 것이라 본다"고 두둔했다.
이 대표가 12%포인트 이상 많은 표를 얻은 화곡본·8동의 경우 대선 득표율만 놓고 보면 관악·은평·금천구 등과 유권자 지형이 비슷한 곳이다. 화곡본동 까치산 근린공원에서 만난 채모(47)씨는 "인사가 제일 잘못됐다고 본다"며 "다른 사람들도 문제가 많지만, 유인촌씨를 또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쓰려는 건 정말 잘못된 인사라고 본다"고 꼬집었다. 전날 가결된 이 대표 체포동의안 이야기를 꺼냈더니 유재석(72)씨는 "검찰에서 터무니없는 얘길 하진 않을 거 아니냐"며 "TV만 틀면 그 얘기가 나와서 아주 지겨웠는데, 이젠 나라가 좀 조용해질 거 같아 다행"이라고 했다.
이번 선거에 국민의힘은 '힘있는 여당', 민주당은 '정권 심판론'을 내걸었다. 특히 내년 총선 전초전인 만큼 여야는 '대선급' 선거대책위원회를 띄웠다. 김 후보 캠프에는 안철수(3선·경기 성남분당갑) 의원이 선대위 상임고문을 맡았다. 충청 출신이 많은 유권자 지형을 감안해 정우택(5선·충북 청주상당)·정진석(5선·충남 공주부여청양) 의원이 명예 공동선대위원장으로 합류했다.
김기현 대표는 추석 연휴 대부분을 선거 지원으로 보낼 예정이다. 김 후보는 이날 페이스북에 "민주당 후보는 보이지 않고 이재명 대표만 보이는 게 참 어처구니없다"며 "김태우는 57만 강서구민만 챙기겠다. 고도제한 해결하고, 빌라를 아파트로, 화곡과 구도심을 마곡으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24일 진 후보 선대위 발대식에는 민주당 인사들이 총출동했다. 강서갑·을·병 국회의원인 강선우(초선)·진성준(재선)·한정애(3선) 의원과 서울시당위원장 김영호(재선·서대문을) 의원이 상임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다. 10여 명의 의원도 이름을 올렸다. 특히 이 대표는 단식 중이던 22일 병원을 찾아온 진 후보와 만나 손을 맞잡으며 "민생과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는 윤석열 정부가 자기 잘못을 돌아볼 수 있게 반드시 이번 선거에서 승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진 후보는 발대식에서 "윤석열 정부 독주를 견제하기 위해 정치에 참여할 결심을 했다"며 "강서구민이 김 후보의 명분 없는 출마에 반드시 회초리를 들어 주실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