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리어우먼 있으니 ‘커리어맨’도”… 덴마크어 사전, 성별 고정관념 없앤다

입력
2023.09.24 18:30
12면
덴마크 공식 사전 개정판에 성중립 반영
'남성 금융인' 단어에 '여성 금융인' 병기
성별 특정 안된 성중립 대명사는 미포함

"'커리어우먼(career woman)'이라는 단어는 있지만, '커리어맨(career man)'이라는 단어는 없다." "'노닥거리다'라는 단어 예문의 주어로는 '소녀들'만 사용된다."

덴마크 언어위원회는 현행 덴마크어 사전 제4차 개정판에 성차별적 요소가 담긴 표현들을 이같이 지목했다. 직업을 뜻하는 덴마크어 'karriere'와 여성을 뜻하는 'kvinde'가 합쳐진 '일하는 여성(karrierekvinde)'이라는 단어가 등재된 반면, 남성을 뜻하는 'mand'를 붙인 '일하는 남성(karrieremand)'이란 말은 따로 없다는 얘기다. 자칫 '직업 활동을 하는 여성은 희귀하다'라는 성별 고정관념을 강화할 수 있다는 게 위원회의 진단이다.

12년 만의 개정… 핵심은 '성별 고정관념 타파'

영국 가디언은 덴마크 언어위원회가 성차별적 요소를 전면 수정한 덴마크어 사전 '제5차 개정판'을 내년 출간할 예정이라고 2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성차별적 함의를 가진 낱말은 물론, 해당 단어의 용례가 담긴 예문도 손보기로 했다. 위원회는 덴마크어를 연구·정리하는 정부 산하 기관으로, 2012년 4차 개정판 사전을 발간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특정 직업군이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생각을 부추길 수 있는 단어들이 대폭 수정된다. 4차 개정판에 올라 있는 '금융인(finansmand)'이 대표적이다. 금융인 자체는 성별과 관계없는데도 남성을 뜻하는 'mand'만 접미사로 쓰였다는 게 위원회의 문제의식이다. '상인(handelsmand)'이나, 부정적 어감인 '술 끊은 사람(afholdsmand)' 등도 마찬가지다.

이에 따라 5차 개정판에선 '여성'을 접목한 단어를 병기하기로 했다. '일하는 남성(karrieremand)'이라는 단어가 추가되고, 금융인을 뜻하는 'finansmand' 옆에는 'finanskvinde(여성 금융인)'를 함께 쓴다. 상인도 'handelsmand'(남성)와 'handelskvinde'(여성)를 모두 기재한다. '술 끊은 여성(afholdskvinde)' 단어도 기재된다.

예문도 바뀐다. '노닥거리는 소녀들' '그녀는 손님과 커피를 먹었다' '그는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됐다' 등이 대상이다. 마르그레테 안데르센 위원회 선임연구원은 덴마크 매체 폴리티켄에 "여성은 노닥거리거나 커피를 끓이고, 남성은 범죄자라는 고정관념을 재현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성중립 대명사' 문턱은 못 넘었다

다만 가디언은 "덴마크가 2015년 스웨덴이 공식 사전에 도입한 '성중립적 대명사'는 반영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당시 스웨덴 한림원은 트랜스젠더나 특정 성별로 지칭되지 않길 원하는 사람을 지칭하기 위해 '그(han)' 또는 '그녀(hon)'가 아닌, 'Hen'을 공식 사전에 등재시켰다. 일부 시민단체에서 사용하던 이 표현은 이후 정부 문서나 법원 판결문 등에도 쓰이게 됐다.

김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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