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억 횡령' 직원... 13년간 몰랐던 경남은행, 사실상 방치

입력
2023.09.20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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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 경남은행 횡령 사고 검사 결과
역대 확인된 은행 횡령 규모 중 최대
내부통제 부실... 명령휴가 실시 '0회'
경남은행 중징계 면하기 어려울 듯

직원 한 명이 십수 년 동안 수백억 원을 빼돌렸다고 알려진 BNK경남은행 횡령 사건에서 실제 횡령액이 3,0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긴 시간 동안 은행 내부통제 시스템이 먹통이었다는 점에서 은행과 지주 모두 엄중한 제재를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금융감독원은 올해 7월 말부터 진행한 경남은행 긴급 현장검사 결과, 은행 투자금융부 직원 이모(51)씨가 13년간 총 2,988억 원을 횡령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20일 밝혔다. 역대 확인된 은행 횡령 금액 중 최대 규모다. 다만 이씨가 횡령 사실을 덮기 위해 여러 대출을 '돌려 막기'하면서 실제 은행의 순손실로 잡힌 금액은 595억 원 남짓이었다.

금감원에 따르면 이씨는 투자금융부에서 15년간 근무하며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대출 업무를 전담했다. 2009년 5월 처음으로 PF대출 자금에 손을 대기 시작한 그는 지난해 7월까지 무려 77회에 걸쳐 총 17개 PF 사업장에서 횡령을 저질렀다. 대출금 자체를 빼돌린 건 13회에 걸쳐 1,023억 원 규모였고, 대출 원리금 상환자금 횡령은 64회에 걸쳐 1,965억 원에 달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서류를 위조해 본인 가족·지인 계좌로 송금하거나 다른 PF 대출을 돌려 막기하는 방식을 활용했다"며 "횡령한 돈은 골드바·상품권 구매나 부동산 매입, 골프·피트니스 회원권 구매, 생활비·자녀유학비 사용, 주식 투자 등에 썼다"고 설명했다.


이씨가 10년 넘게 돈을 빼돌리는 과정에서 경남은행은 물론 BNK금융지주까지 내부통제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고 금감원은 판단했다. 실제 경남은행에서는 대출금 지급 절차는 물론, 대출 실행ㆍ상환 과정에서 차주에게 통지하는 시스템이 없었다. 은행 감사는 부실했고, 이상거래 모니터링은 영업점만 실시했을 뿐 본점은 건너뛴 것으로 확인됐다.

이씨를 15년간 한 부서에 근무토록 한 데다 직무분리(하나의 업무 복수 직원이 담당)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점도 드러났다. 무엇보다 경남은행은 명령휴가 제도를 한 번도 실시하지 않아 사실상 횡령을 방치한 것으로 파악됐다. 명령휴가 제도는 금융사고 방지를 위해 직원에게 예고 없이 휴가를 준 뒤 해당 직원이 담당하던 업무를 감사하는 제도다.

은행의 방기에 이씨가 범행을 숨기고 도피를 준비할 시간을 벌었던 사실도 드러났다. 금감원은 지난해 모든 은행에 PF 대출 등 고위험 업무 장기 담당자 유무를 포함한 자체 점검 보고서를 요청했는데, 당시 횡령 당사자인 이씨가 직접 '없다'고 답한 것이다.

금감원은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징계 과정에 돌입한다. BNK금융과 경남은행 모두 중징계를 면하기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금감원 측은 "사고 관련 임직원의 위법·부당행위에 대해 엄정 조치할 방침"이라며 "앞으로 전 금융권에 대해 내부통제 시스템의 실효성을 지속적으로 높여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씨는 이달 8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곽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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