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문제는 앞으로 100년 안에 해결된다" 위대한 경제학자 케인스는 1세기 전 이렇게 예측했다

입력
2023.09.23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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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다시, 케인스'

"중차대한 전쟁이 없고 급격한 인구 증가가 일어나지 않는 한, 경제 문제는 앞으로 100년 안에 해결되거나 그 해법이 적어도 가시권 내에 들어온다."

20세기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이름은 하나의 고유명사로 취급된다. 경제대공황 같은 경기 후퇴와 불황 상황에서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주장한 '케인스 경제학'은 그 자체로 경제학파의 한 분류가 됐다.

그런 그가 오늘날의 경제를 예측한 한 편의 에세이가 있다. 제목은 '우리 손자 손녀들이 누릴 경제적 가능성.' 1928년 초에 탄생해 수정을 거쳐 1931년에 출간한 책에 수록됐다. 시대의 석학이 100년 전 예견한 오늘날의 경제 상황은 어떠한 모습일까.

케인스는 "앞으로 100년 후 선진국의 생활 수준이 오늘날보다 4배에서 8배는 더 높아질 것으로 예측한다"고 했다. 1930년대 여러 나라의 국내총생산(GDP)과 오늘날의 것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격차가 벌어졌으므로, 이러한 주장이 그다지 대단할 것도 없어 보인다. 하지만, 글이 쓰인 시기는 경제대공황이 세계를 휩쓸었던 때임에 주목하자. "19세기를 장식했던 거대한 경제 발전의 시대가 끝났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심심찮게 들린다" "앞으로 10년간은 더 큰 번영보다 쇠퇴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들린다" 같은 비관론을 부정하며 시작한 것만으로, 케인스의 비범한 통찰이 엿보인다.

그리 길지 않은 분량의 에세이에서 케인스는 인류는 일주일에 15시간만 일해도 경제적 문제에서 해방될 수 있게 되며, 풍요로움 속에서 예술, 여가, 시 같은 것에만 전념하게 된다고 봤다. 상상만으로도 행복해지지만, 사실 그의 생각이 오늘날 현실과는 무척 거리가 있다는 것을 주당 52시간을 근무하는 한국인은 안다.

책이 케인스의 100년 전 에세이를 출간하는 것에 그쳤다면 이 책은 그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번역본에 불과했을 것이다. 하나 신간 '다시, 케인스'는 이 에세이에 더해 오늘날을 살아가는 경제 석학 18명의 의견을 더함으로써 자본주의가 나아갈 길에 대한 유익한 지혜를 독자들에게 제공한다.

필진부터 화려하다. 18명의 석학 중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만 4명이다. 이들은 경제 문제가 해결된 후에 대한 케인스의 낙관적인 전망을 비판하고, 그 예측이 왜 틀렸는지를 면밀하게 따져본다.

2001년 수상자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케인스가 예측한 미래에 결정적인 변수가 된 '욕구'에 주목한다. 그는 경제적 부를 성취한 미국과 유럽의 여가 시간과 경제모델을 비교하며 "경제 체제가 만족을 모르는 욕구를 만들어냈다"고 봤다. 케인스의 예측처럼 기본적인 경제 문제가 해결되어 경제적 자유를 얻은 상황 속에서도, 개인은 노동을 줄이고 여가에 심취하는 것이 아니라 부유한 이웃과 자신의 소비 사이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야근이나 부업에 뛰어드는 게 현실이라는 스티글리츠의 시각이 조금 더 설득력이 있다. 당장 유튜브에서 인기를 끄는 동기부여 인플루언서만 하더라도, 기본적 경제 문제를 해결한 이들이 더 많은 부, 높은 지위 등을 욕망하며 부단히 스스로를 노동의 굴레로 넣지 않던가. 아마 케인스는 손바닥만 한 전자기기를 통해 타인의 고급 펜트하우스, 대형 세단, 명품 의류 같은 것이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인스타그램이라는 서비스가 100년 뒤 이렇게 성행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1987년 수상자 로버트 솔로는 미국과 유럽의 평균 노동시간이 현격히 차이 나는 이유가 국민들의 문화적 태도 때문인지, 급여와 세금 구조로 인한 것인지를 고찰한다. 1992년 수상자 게리 베커와 루이스 라요 미국 노스웨스턴대 교수는 '경제 침체' '복리가 소득에 끼친 영향' '과학의 경제생활 활용의 중요성'을 강조한 케인스의 통찰력에는 찬사를, 그러나 '신제품이 창출하는 수요, 새로운 소비재의 탄생 가능성' 등을 간과한 점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토로한다.

케인스는 새로운 것을 탐구하고 자아를 실현하려는 인간의 열망을 간과했다. 에세이 발표 이후 제2차 세계대전, 여성의 활발한 노동 참여, 기술 혁신 등 케인스가 알 수 없었던 인류사적 사건이 여럿 발생하기도 했다. 하나 온갖 첨단 기계와 데이터를 두고도 당장 각국의 호황과 불황도 정확하게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100년 전의 한 경제학자의 전망에 흠이 있다고 해서 놀랄 것만은 아니다. 맞고 틀림보다 중요한 것은 1세기 전 석학이 던진 화두와 논쟁에 진지하게 임하는 현시대 학자 간 유기적인 대화에서 길어낼 수 있는 혜안 아닐까. 무엇보다 케인스를 포함하여 20, 21세기 석학 19명의 지혜를 단 한 권의 단행본으로 읽어낼 수 있으니.


이혜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