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히 처벌" "적용 유예" 중대재해법 2년 다 되도록 갑론을박

입력
2023.09.20 04:30
노동·시민사회 "중대재해 기업 엄정 처벌"
경총 토론회 "형식적 안전…법 정비 필요"
'안전 경각심' 취지 못 살리고 있단 지적도

산업재해 사망 사고 예방을 위해 도입된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이 시행 2년을 앞두고 있지만 노동계와 경영계 모두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계속되고 있다. 노동계는 '처벌 수위는 낮고 실질적인 책임자는 면피하면서 법 취지가 퇴색됐다'고 지적한다. 경영계는 '법안 내용이 모호하고 징역은 과하다'는 입장이다.

민주노총과 '생명 안전 후퇴 및 중대재해처벌법개악 저지 공동행동'은 19일부터 2박 3일간 중대재해 발생 사업장과 관할 지방고용노동청·검찰청을 돌면서 기자회견과 집회를 연다. 이들은 "중대재해 기업에 대한 엄정 처벌을 촉구하고, 50인(억) 미만 사업장에 법 적용 유예를 연장하는 개악안을 비롯 정부의 생명 안전 후퇴 개악을 저지하기 위해 투쟁에 나선다"고 밝혔다.

단체는 이날 오후 경기 수원시 고용노동부 경기지청에서 지난달 발생한 '샤니 빵공장 끼임 사망 사고'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샤니의 실질적, 최종적 의사 결정권을 행사하는 허영인 SPC 회장을 경영책임자로 입건해 조사해야 한다"면서 허영인 회장, 샤니 안전보건관리책임자, 샤니를 중처법 또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고발했다.

중처법 시행 이래 노동자 8명이 숨진 건설사 디엘이앤씨(옛 대림산업), 지난 6월 폭염 속 코스트코 하남점 야외주차장에서 카트 정리를 하다 숨진 김동호(30)씨와 관련해서도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집회가 이날 잇따라 열렸다. 21일까지 오송 참사 사건, 작년 9월 화재로 하청 노동자 등 7명이 숨진 대전 현대아울렛, 법 시행 후 노동자 4명이 숨진 중철강사 세아베스틸 등 앞에서도 집회와 선전전이 열린다.

같은 날 한국경영자총연합회는 '중처법 개선방향 토론회'를 열고 "법 적용을 2년 늦추는 개정이 시급히 추진돼야 한다"고 했다. 토론회 발제를 맡은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법 시행 후 현재까지 검찰 기소 24건 중 대기업은 1곳뿐이고 나머지는 중소업체"라며 "대기업 경영책임자 처벌이 법 도입 취지였지만, 취약한 산재 예방 인프라 속에서 기득권에서 비켜난 기업이 기소와 처벌 타깃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현재까지 1심 결과가 나온 중처법 위반 4건 판례(1건 실형, 3건 집행유예)를 분석한 결과 "법에 규정된 매뉴얼, 평가기준, 예산 편성·집행 등을 형식적으로 이행하거나 서류만 구비하면 처벌될 일이 없다"면서 "형식적 안전보건 조장을 막으려면 중처법을 폐지하고 산안법으로 일원화하거나, 예측·이행할 수 있는 법으로의 대대적 정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서용윤 동국대 산업시스템공학과 교수는 "50인 미만 기업은 산안법으로 경영책임자 처벌이 이미 가능한 만큼, 중처법 시행에 따른 중복처벌 효과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또 "근본 문제는 소규모 기업의 안전관리 전문성 부재로, 정부의 감독과 효과적인 지원 사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산재 사망자 다섯 중 넷(80.8%)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했는데, 고용부나 중소기업중앙회 최근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이들 기업의 80%가량은 중처법 적용에 대한 준비가 안 됐다고 답했다.

법 시행 2주년인 내년 1월부터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법이 전면 확대 적용될 예정인 가운데, 최근 중처법 관련 논의는 '적용 유예' 여부에만 집중된 양상이다. 최근 국민의힘은 전면 적용을 2년 더 유예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법상 경영책임자 범위 명료화, 처벌 방식(경제벌·형사처벌) 논의는 물론 중소기업에 대한 정부 컨설팅 등 지원이 확대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산안법만으로 산재 예방이 미비해 처벌을 강화하는 추가 입법을 한 것인데, 처벌 수위는 일부 높아졌지만 안전보건최고책임자(CSO)나 명목상 대표를 처벌하고 실질적 소유자는 빠져나가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고용부는 당초 올해 '중대재해처벌법령 개선 태스크포스(TF)'를 발족해 상반기 내 개선안을 내놓을 예정이었으나, 논의는 기약 없이 길어지고 있다.

최나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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