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은행 부장 1300억 횡령은 리먼 사태 '주식 폭망'에서 시작됐다

입력
2023.09.19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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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범행 도운 '고교 동창'도 함께 기소
횡령금 투자 후 리먼 사태로 절반 날리자
돌려막기 식으로 돈 빼돌리기 '악순환'

BNK경남은행에서 발생한 1,300억 원대 횡령 사건의 공범인 증권사 직원이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고교 동창 관계인 주범과 공범은 15년 전부터 횡령 범죄를 계속해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중앙지검 범죄수익환수부(부장 임세진)는 19일 증권사 전문영업직원 황모(52)씨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증거인멸교사, 사문서 위조 및 행사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황씨는 경남은행 횡령 사건을 주도한 혐의로 8일 구속기소된 경남은행 투자금융부장 이모(51)씨의 고교 동창이다.

검찰에 따르면 황씨는 2016년 8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이씨와 공모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행사 네 곳의 직원을 사칭해 시행사 명의 출금전표 등을 위조했다. 그는 이렇게 11차례 위조한 출금전표 등을 사용해 경남은행이 보관하던 PF 대출 자금 1,387억 원을 페이퍼컴퍼니 계좌로 빼돌렸고, 이 자금을 주식·선물·옵션 등에 투자한 혐의(특경 횡령·사문서 위조 및 행사)를 받고 있다.

검찰은 수사선상에 먼저 오른 이씨의 도주를 돕기 위해 황씨가 지인 최모(24)씨를 시켜 이씨가 사용하던 컴퓨터를 포맷하게 한 혐의(증거인멸교사)도 적용했다. 검찰은 최씨가 본인 명의 휴대폰 2대를 개통해 황씨에게 건네줘 도주 중인 이씨와의 연락을 도운 사실도 추가로 확인, 최씨를 전기통신사업법 위반 및 증거인멸 혐의로 이날 불구속 기소했다.

조사 결과 이들은 15년 전 범행을 공모했다. 2008년 7월 PF 대출 자금을 관리하는 업무를 맡게 된 이씨는 관리하던 고객사 자금 50억 원이 당분간 필요하지 않다는 점을 파악한 뒤, 이 돈을 주식에 투자하자며 고교 동창 황씨를 꼬드겼다.

하지만 주식 시장은 이들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주식에 투자하고 몇 달 후 리먼브라더스 사태로 주가가 폭락해 횡령액 절반인 25억 원의 손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횡령액 변제를 위해 '돌려막기' 수법으로 회사 자금을 계속 횡령해야 하는 악순환이 시작됐다. 이씨는 고객사 자금을 빼돌려 투자금을 마련하고, 황씨는 이를 주식이나 선물 등에 투자해 불리는 역할을 맡았다. 이 과정에서 횡령액은 1,387억 원까지 불어났다.

검찰은 황씨가 이씨에게 도주자금으로 받은 3,400여만 원 등을 압수했다. 이씨와 배우자 명의의 골프회원권 등 총 5억5,000만 원 상당의 재산을 추가로 추징보전해 현재까지 180억 원 상당 범죄피해재산을 확보했다. 아울러 이씨의 배우자, 형제 등 가족 6명도 34억 원가량을 무상으로 받은 사실도 밝혀내 몰수·추징을 위한 절차를 진행 중이다.

두 사람의 재판은 병합 진행될 예정이다. 첫 공판기일은 다음달 5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다.


강지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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