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의료보험 가입자가 병의원에서 필요한 서류를 발급받지 않고도 온라인상에서 손쉽게 보험금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하는 실손청구간소화법(보험업법 일부 개정안)이 표류하고 있다. 지난 6월 소관 상임위원회인 정무위를 통과했는데도 이달 13일 법제사법위원회가 여야 이견으로 합의를 못 한 데 이어 이를 재논의키로 한 18일 전체회의도 국회 파행으로 열리지 못한 탓이다.
국민건강보험이 보장하지 못하는 의료비(본인부담금과 비급여 항목)를 지급하는 실손의료보험은 가입자가 4,000만 명에 달해 제2의 건강보험으로 불린다. 그러나 현재 환자가 보험금을 받으려면 먼저 병원에서 영수증과 진료비 세부내역 등 서류를 발급받은 뒤 이를 다시 보험사로 팩스나 사진을 찍어 보내야만 한다. 연간 청구 건수는 1억 건, 버려지는 종이는 4억 장도 넘는다. 절차가 번거롭고 까다로워 아예 보험금을 청구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고령층에겐 더 어렵다. 이렇게 잠자는 실손보험금은 연간 3,000억 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실손청구간소화에 대한 요구는 꾸준히 제기돼 왔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실손보험금 서면 청구에 따른 국가적 낭비가 심하다며 개선을 권고한 게 2009년이다. 경실련 등 시민단체들도 해마다 전산화를 촉구했다. 반면 의료계는 의료법과 충돌한다며 반대하고 있다. 의료법은 ‘의사가 환자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환자 진료기록 또는 조제 기록부를 열람하게 하거나 사본을 주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와 법제처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의료계는 민감한 환자 정보가 유출될 가능성도 우려하지만 종이 서류를 전산으로 바꾸는 것뿐인데 유출 가능성이 더 커진다는 건 설득력이 약하다. 중간 정보처리기관을 보험개발원으로 정하고 정보를 저장할 수 없도록 하는 보완책도 제시된 상태다.
14년간 대다수 국민이 원해온 실손청구간소화를 국민을 대변해야 할 국회가 더 이상 미루는 건 직무유기이고 온당하지 않다. 민생 현안으로 여겨 신속하게 처리해 하루빨리 국민 불편을 줄이는 게 마땅하다.